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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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은 뒤로한 채… 예타면제 빗장 푼 정부 [뉴스분석]

23개사업 24조 예타면제 발표 / 2022년까지 175조 투입 균형발전 / 원칙적으로 수도권 사업은 제외 / 일부 최소한의 검토도 없이 진행 / 장기적으로 지역경제 독 될수도 / 정치권 “총선용 퍼주기냐” 비판
새만금국제공항·남부내륙철도 건설 등 전국 17개 시·도 23개 사업이 예비타당성(예타) 조사 없이 추진된다. 예타 면제로 선정된 사업에 들어가는 돈만 24조1000억원이다. 80%가 넘는 20조원이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투입된다. 그동안 대규모 SOC 사업을 추진하지 않겠다던 정부가 경기 부양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예타 면제’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분석이다.

일부 사업의 경우 예타 조사라는 최소한의 경제성 검토 없이 진행됨에 따라 향후 경제 부담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정치권에서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 숙원사업을 해결해 준 선심성 사업”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발표하는 홍 부총리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할 전국 17개 시·도 23개 사업을 발표하고 있다.
세종=뉴시스

29일 정부는 국무회의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2019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 추진방안을 확정했다. 국무회의에서는 2022년까지 175조원을 투입해 지역 간 균형발전을 추진하는 내용의 ‘제4차 국가균형발전 5개년 계획’도 심의를 통과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무회의 후 브리핑에서 “지역발전을 뒷받침하는 핵심 인프라와 전략산업에 대한 국가 차원의 종합적이고 선제적인 투자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야 한다”며 “국가재정법에 따라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대상 사업을 확정·의결했다”고 밝혔다.

예타 면제 대상 사업은 17개 시·도가 신청한 32개 사업, 68조7000억원 상당(중복사업 포함 시 33개, 81조5000억원) 중 국가균형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되 사업계획이 구체화해 신속히 추진 가능한 사업으로 정했다.
정부가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국무회의를 열어 의결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사업 대상에 서부경남KTX가 포함된 29일 창원시 의창구 경남도청 입구에 이를 환영하는 대형 펼침막이 걸려있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취지를 감안해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사업은 제외됐다. 대상으로 선정된 사업은 △R&D 투자 등을 통한 지역의 전략산업 육성(3조6000억원) △지역산업을 뒷받침할 도로·철도 인프라 확충(5조7000억원) △전국을 연결하는 광역 교통·물류망 구축(10조9000억원) △환경·의료·교통시설 등 지역주민 삶의 질 제고(4조원)로 나뉜다.

정부는 이번 대규모 예타 면제로 지역균형발전은 물론 내수 촉진과 고용 창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볼 때 오히려 우리 경제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규모 SOC 사업으로 지역 경기가 반짝 활기를 보일 수 있지만 이후 기반시설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면 의정부 경전철, 전남 영암 포뮬러원(F1) 사업처럼 지역 경제에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이번에 예타 면제 사업으로 선정된 새만금국제공항의 경우도 무안국제공항과 노선이 겹쳐 ‘반쪽짜리 공항’으로 전락할 수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부 시급한 추진이 필요한 사업도 있지만, 이렇게 지역에 하나씩 선심 쓰듯 풀어줄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예타 면제 사업을 선정할 게 아니라 예타 조사 우선 사업을 선정해 추진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환경회의 관계자들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대규모 건설·토목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면제 추진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부의 이번 예타 면제에 대해 ‘총선용 퍼주기’ 지적과 함께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연합은 성명서를 통해 “정부 여당이 적폐로 규정했던 이명박정부의 4대강 사업과 같은 규모로 예타를 면제했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외쳤던 사람중심 경제, 소득주도 성장은 결국 말뿐인 구호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환경부의 4대강 조사·평가단 민간위원장을 맡고 있는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도 페이스북을 통해 “정부 여당은 예비타당성 면제 방식을 동원한 이명박정부의 4대강 사업을 격렬히 성토했다. 그때 야당이던 현 정권이 수십조원에 달하는 사업에 대해 예타 면제를 추진한다니 말문이 막힌다”고 썼다.

세종=안용성 기자 ysah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