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공공기관에서 이뤄진 채용비리 형태는 천태만상이었다. 경쟁률이 수백·수천대의 일을 기록할 정도로 청년 구직자들이 몰리는 공공부문에서 특정인을 채용하기 위해 서류 조작뿐 아니라 합격 여부를 뒤바꾼 정황까지 발견됬다.
강원대병원은 2018년 10월 필기시험 성적을 제대로 산정하지 않으며 합격자와 불합격자의 당락을 바꿨다. 합격선에 든 2명을 떨어뜨리고 불합격자를 합격시켰다. 경북대병원은 2014년 2월 응시자격(의료 관련 자격증)이 없는 직원 자매와 조카, 자녀에게 임의로 자격을 부여한 뒤 채용했다. 이 경우 입사 후 이들이 맡게 된 업무 성격에 따라 의료법을 위반했을 가능성도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3개월간 ‘공공기관 채용실태 정기 전수조사’를 실시한 결과 적발된 채용비리 사례들이다. 20일 권익위에 따르면 2017년 10월 이후 진행된 신규채용과 지난 5년간 이뤄진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 1205개 공공기관에서 182건의 채용비리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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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합동 발표 박은정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공공기관 채용실태 정기 전수조사 결과 및 개선대책’ 정부 합동 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 윤종인 행정안전부 차관, 박 위원장, 구윤철 기획재정부 2차관, 이건리 권익위 부위원장. 연합뉴스 |
채용비리는 한국 사회의 병폐로 지적된 지 오래지만 공공부문에서조차 이를 근절하기 위한 장치가 부족했다. 공공기관 채용실태 전수조사는 2016년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이 불거진 후 처음 이뤄졌다. 이전에는 기획재정부, 행정안정부 등에 개별 사건이 신고될 때마다 조사하거나 소규모 실태조사를 벌였을 뿐이다. 권익위 관계자는 “지난해 4월 제2차 반부패 정책협의회에서 대표적인 부패로 채용비리가 지적됐고 그때부터 권익위가 반부패 총괄기구로서 담당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공공기관 채용실태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한 박은정 국민권익위원장은 향후 조사를 정례화하고 채용비리 연루자를 각 기관이 솜방망이 처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채용비리 공통 징계양형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비리자에 대한 징계 감경을 금지하고 일정 기간 승진 및 인사·감사 업무 보직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기로 했다.
이와 함께 파견·용역업체 등 민간기업에 부당한 채용 청탁을 할 수 없도록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을 추진하고, 공직자에 의한 가족채용 특혜 제공을 제한하는 내용의 이해충돌방지법 제정도 추진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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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도 9급 국가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의 원서 접수가 시작된 20일 서울 동작구 단꿈 공무원 학원 내 독서실에서 수험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
하지만 국회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국회는 지난해 말 서울교통공사 채용비리를 계기로 ‘공공부문 채용비리 관련 국정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한 뒤 한 차례도 회의를 소집하지 않았다. 특위 명단에 오른 한 의원은 “각 당 모두 채용비리와 무관하지 않다 보니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며 “특위는 꾸렸지만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권익위 등 정부가 추진 중인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지난해 1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정부는 환노위 소속 의원들의 공감대가 높아 현재 여야 대립으로 굳게 닫힌 국회 문이 열리기만 하면 쉽게 처리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의원 간 이견도 존재하는 상태다. 지난해 12월21일 환노위 법안심사소위 회의록을 보면 해당 법에 채용 관련 부당한 압력, 청탁을 처벌하는 조항을 담아야 한다는 고용부 임서정 차관의 주장에 자유한국당 김도읍 의원은 “업무상 배임 등 다른 일반법으로도 처벌이 된다”며 반대했다. 채용비리와 관련한 국회 논의는 현재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