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충남 홍성군에서 만난 개 농장 주인 이모(61)씨는 얼굴에 순박한 미소를 띠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최근 국제 동물보호단체 HSI(Humane Society International)의 도움을 받아 개 농장을 폐쇄하기로 했다. HSI는 지난 13일부터 약 2주간 개 200여 마리를 구조해 캐나다-영국 등으로 입양 보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씨가 운영했던 충남 홍성군의 개농장 |
이씨가 개농장을 시작한 건 식용견 농장을 운영하던 지인의 권유때문이었다. 사업이 실패해 생활이 어려워진 이씨에게 지인은 “개농장은 투자액이 적은데 수입이 꽤 짭짤하다”고 꼬드겼다.
솔깃했던 이씨는 가족들의 반대에도 도사견 4마리를 사들여 새끼들을 불려 나갔다. 신고나 허가를 받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허허벌판인 땅을 임대해 뜬장 몇 개를 갖다놓기 시작한 게 벌써 8년이나 지났다.
그는 “가족들이 너무 싫어해서 한 번도 여기(개농장)를 안 와봤다. 문 앞까지만 오고 도로 돌아가더라”며 “(가족들이) 엄청 말렸는데 돈이 필요하니 그때는 고집으로 했다”고 전했다.
실제 수입도 짭짤했단다. 출산을 시켜야 하는 암컷은 놔두고 수컷들만 개고기 업자에게 판매했다. 개고기 시장이 호황일 땐 1마리당 20만원씩 받고 팔았다.
뜬장에 갇혀있는 개 |
그런데 몇 해 전부터 개고기 수요가 줄며 상황이 나빠졌다. 개고기 값은 마리당 10만원으로 떨어졌다.
결국 이씨는 식용견 농장 외에 애견 번식농장도 차렸다. 가건물 안에 뜬장을 설치해 품종견을 암수 쌍쌍이 넣었다. 푸들, 치와와, 시츄, 말티즈, 스피츠, 웰시코기, 닥스훈트, 시베리안 허스키, 말라뮤트, 프렌치 불독 등 다양하게 키웠다. 이씨는 “예전에는 요크셔테리어, 시츄 이런 애들을 많이 키웠는데 요새는 비숑이 인기가 많대서 그것도 키웠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는 않았다. 생후 30~35일이면 경매장에 넘겨야 하는 강아지들은 생각보다 잘 죽었다. 이씨는 “너무 어려 10마리당 3~4마리는 죽었다”고 말했다.
데리고 간 강아지를 한 마리도 못 팔고 돌아온 날도 허다했다. 크기가 너무 크거나 외모가 ‘떨어진다’는 게 이유였다. 운이 좋을 땐 암컷 푸들 한 마리를 20만원에도 팔았지만 보통은 10만원, 때론 몇만 원에 넘기기도 했다. 강아지가 안 팔리면 사료값이 부담돼 애견샵 업자에게 공짜로 주고 온 적도 있다고 말했다. 애견샵 업자들은 보통 산값의 2.5배 가격으로 손님들에게 팔았다. 제대로 못 큰 강아지들이 금방 죽어 손해를 본다는 게 이유였다.
구조 활동을 지켜보는 농장주 이모(61)씨 |
이씨는 건강이 나빠져 개농장을 운영하기 힘들어지자 지난해 여름부터 그만둬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그는 HSI의 도움을 받고 개농장을 폐쇄한 지인의 조언에 따라 HSI에 구조를 요청했다.
김나라 HSI 매니저와 ‘아이작’ |
개농장 폐쇄 후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묻자 이씨는 “경비 일 같은 거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경력만 뽑는대서 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HSI 측은 이씨의 일자리 지원을 위해 컴퓨터 활용 연수 등을 고려 중이다.
HSI 봉사자들이 농장에서 개들을 구조하고 있다 |
농장이 정리되는 모습을 보며 이씨는 “시원섭섭하다”면서도 복잡한 심경인 듯했다. 구조된 개들이 봉사자들을 따르는 모습을 보자 “저렇게 꼬리치고 반가워하는 걸 처음 본다”고 했다. ‘아이작(Isaac)’이란 이름을 얻은 개가 김 매니저의 품에 안겨 마지막 인사를 할 땐 “다음에 보자”고 했다가 “이제 못 보는구나. 가서 재밌게 놀고 잘 살아라”라고 말을 고치기도 했다.
HSI 봉사자들이 농장에서 개들을 구조하고 있다 |
그는 이어 “아이러니하게도 ‘왜 개농장을 시작했냐’고 물으면 ‘개가 좋아서’라고 대답하는 농장주 분들이 대부분이다. 일부러 개를 학대하려고 개농장을 운영했다기보다 그게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신다. 개농장 금지를 위한 법적 규제뿐 아니라 동물에 대한 인식 개선 캠페인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개들이 빠져나온 뜬장에 빈 밥그릇이 놓여있다 |
글·사진, 홍성=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