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피해 무인도에서만 번식하는 노랑부리백로와 저어새가 사람이 살고 있는 섬 백령도에 둥지를 틀었다.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새들을 유인도로 보낸 건 다름 아닌 ‘염소’였다.
환경부와 한강유역환경청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 노랑부리백로와 저어새가 백령도에서 최초로 번식에 성공한 것을 확인했다고 9일 밝혔다.
한강청 생태계 변화관찰조사단은 지난해 5월부터 실시한 ‘백령도 생태계 변화관찰’에서 노랑부리백로 19쌍이 번식해 둥지를 지은 것을 확인했다. 그 주변에서 저어새 3쌍도 3마리씩 총 9마리의 새끼를 기르고 있었다.
이 두 종의 새들은 원래 연평도 인근 무인도인 구지도에서 서식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다리에 가락지가 부착된 저어새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 가락지는 국내 연구진이 새의 이동경로를 확인하기 위해 2010년 구지도에서 부착한 것이다.
노랑부리백로와 저어새가 유인도에서 알을 낳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저어새의 유인도 번식은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없다.
여기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건 염소였다. 인근 어민들이 구지도에서 염소 방목을 시작한 뒤로 염소들이 성인 가슴 높이까지 자란 풀을 뜯어먹고, 나무껍질까지 갉아먹어 서식 환경이 달라진 것이다.
노랑부리백로는 포식자의 눈에 띄지 않게 빽빽한 관목림이나 찔레 같은 덩굴성식물 안쪽에서 번식을 한다. 그런데 구지도가 초지로 바뀌고 나무마저 말라죽자 백령도로 건너온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원래 평평한 곳에 알을 낳는 저어새에게 구지도의 초지 증가는 달가운 변화였다. 번식지가 늘면서 개체수가 증가했고 포화에 이르자 백령도를 찾은 것으로 추정된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