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신(동빈) 회장을 백악관에서 맞이하게 돼 매우 기쁘다. 그들(롯데)은 루이지애나에 31억 달러를 투자했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세계 경제 질서가 어떻게 되건 말건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며 동맹국에게까자 전방위로 통상압박을 가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기업들의 대미 직접 투자에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기업들은 미국 시장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는 점을 감안, 대규모 공장건설과 지분 인수 등 미국 현지화 전략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고율 관세’를 무기로 중국과의 무역 전쟁도 불사하는 종잡기 힘든 트럼프 대통령의 눈 밖에 들어 좋을 것도 없기 때문으로도 보인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롯데그룹 등 한국 기업들에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대미투자를 독려하고 있다.
◆트럼프, 한국 대기업 총수론 처음 백악관에서 신동빈 회장 면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13일(현지시간)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30분 가량 면담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1월 말 취임한 이후 백악관에서 국내 대기업 총수를 면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백악관 오벌오피스(집무실)에서 신 회장과 면담한 뒤 트위터 계정에 글을 올려 이어 “한국 기업으로부터의 최대 규모의 대미 투자이며, 미국민을 위한 일자리 수천 개를 만들었다”며 “한국 같은 훌륭한 파트너들은 미국 경제가 그 어느 때보다 튼튼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 루이지애나주에서 신 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롯데케미칼 석유화학공장 준공식 행사장에도 축전을 보내 “대미 투자라는 현명한 결정을 내린 롯데그룹에 박수를 보낸다”며 “이 투자는 미국의 승리이자 한국의 승리이고, 우리 양국 동맹의 굳건함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또한 “31억 달러(약 3조6천억 원)에 달하는 투자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가장 큰 대미 투자 중 하나이며, 한국 기업이 미국의 화학 공장에 투자한 것으로는 가장 큰 규모”라고 평가했다.
롯데케미칼의 루이지애나 공장은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을 연간 100만t 생산할 수 있는 초대형 설비를 갖췄다. 국내 단일 기업의 대미 투자 규모로는 역대 2번째 규모다. 롯데는 지분의 88%를 투자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 신 회장의 면담 자리에는 한국 측에서 조윤제 주미대사와 김교현 롯데 화학 BU장, 윤종민 롯데지주 경영전략실장, 미국 측에선 매슈 포틴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이 함께했다.
조 대사가 “한국 기업들이 최근 들어 점점 미국에 투자를 많이 한다. 지금까지 한국의 대미 투자 누적액 가운데 4분의 1이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지난 2년간 일어났다”고 설명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 활성화에 반색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대기업 속속 미국으로
국내 대기업들은 세계 최대 제품판매 시장인 미국에 롯데처럼 공장 건설과 지분 인수 등으로 미국 현지화를 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이익 우선주의’ 정책 압박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데다 미국 경제가 호황이서 투자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특히 미국이 4차 산업혁명 관련 핵심 기술을 대거 보유하고 있어서 향후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SK이노베이션도 올해 들어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배터리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SK이노베이션은 2021년까지 1단계, 2025년까지 2단계 개발을 통해 연 20GWh(기가와트시) 규모의 배터리를 생산할 예정이다.
1, 2단계에 총 16억7000만 달러를 투자하고 장기적으로 총 50억 달러를 투입해 50GWh 규모로 생산 능력을 확장할 계획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와 테네시주에 세탁기 등 가전 공장을 건설하고 가동을 서두르고 있다.
한화큐셀코리아는 미국 조지아주와 태양광모듈 생산공장을 건설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GS그룹의 발전 계열사인 GS EPS가 국내 민간 발전회사로는 처음으로 미국 전력시장에 진출했다.
GS EPS는 미국 뉴저지주 린든시에 있는 972㎿ 용량의 린든 가스발전소(Linden Cogeneration Complex)의 보통주 10%를 인수했다.
기업들이 미국 투자는 시장 교두보 확보 목적도 있지만 미 정부의 통상압박도 주요 요인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세탁기 공장 조기 가동은 미국이 삼성과 LG 등이 생산한 수입 세탁기에 고율의 세이프가드 관세를 부과한 데 대응한 것이다. 미국 시장이 중요한 기업으로선 투자 확대 결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미 정부의 직접 타깃은 아니라고 해도 미중 무역분쟁 격화 등에 따른 유탄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미국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여기에 미국 투자환경도 괜찮은 편이다. 중국 성장세가 둔화한 가운데 전 세계에서 미국 경제만 탄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미국은 주요 시장이면서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을 많이 갖고있어서 협력 필요성이 더 커진다”며 “앞으로도 한국 기업들의 미국 투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