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원이었던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가 국회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에 올려지면서 어느 때보다 국민의 신뢰와 지지가 절실한 경찰이 잇따라 고약한 상황에 맞닥뜨리는 모습이다. 빅뱅 전 멤버 승리(본명 이승현·29)에 대해 성매매 알선·횡령 등 혐의 입증을 자신하며 신청한 구속영장은 기각되고, 승리 등의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경찰총장’으로 불린 윤모 총경의 청탁금지법 위반 의혹은 무혐의로 결론내면서 요란을 떨었던 ‘버닝썬 사태’ 수사가 경찰의 자체 노력과는 별개로 국민 신뢰를 얻기엔 미흡해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강신명·이철성 전 경찰청장이 박근혜정부 당시 국회의원 선거에 불법 개입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서울지방경찰청은 성매매 업소를 운영하던 전직 경찰관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하는 등 많은 국민이 혀를 찰 만한 장면도 잇따랐다.
가뜩이나 패스트트랙에 오른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 검찰이 대놓고 반발하며 경찰에 불리한 여론전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찰로선 갑갑할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두 달 넘게 전문 수사인력 대거 투입하더니···‘용두사미’로 막 내린 ‘버닝썬 수사’
서울지방경찰청은 15일 서울 종로구 내자동 경찰청사에서 윤 총경 관련 유착 의혹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이 승리와 정준영(30·구속) 등이 함께 있는 카톡방을 분석하던 중 ‘경찰총장’에 대해 언급된 내용을 확인하고 내사에 착수한 것은 지난 3월 8일이다. 이 카톡방에서는 경찰 고위 인사가 자신들의 뒤를 봐주는 듯한 대화 내용이 오갔다.
특히 이 카톡방 제보자의 법률대리인 방정현 변호사가 다음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경찰 고위간부의 유착 의혹을 제기하자 경찰청은 서둘러 기자간담회를 열고 철저한 수사를 강조했다. 경찰은 경찰 유착 의혹 수사에 조직의 명운을 걸었다고 할 만큼 수사 인력을 집중적으로 투입했다.
‘버닝썬 사태’와 관련한 수사 인력은 총 152명까지 늘었고 이 중 56명이 경찰 유착 의혹을 담당했다.
경찰은 윤 총경의 계좌와 카드사용 내역을 비롯해 윤 총경 부친의 계좌와 배우자인 김모 경정의 현금영수증 내역까지도 확보해 면밀히 분석해왔다. 금융정보분석원(FIU)으로부터 윤 총경과 친인척 등 40명에 대한 자료도 받아 살폈다.
윤 총경에게 골프와 식사 등을 접대한 유인석 전 유리홀딩스 대표와 승리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하고 관계자들의 통화내역을 분석했으며 식당과 골프장에 대한 탐문수사를 벌이는 등 이를 잡듯 샅샅이 뒤졌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윤 총경과 관련해 조사 대상에 오른 인물만 50명이나 됐다.
경찰은 윤 총경이 유 전 대표를 만나 총 4차례 골프를 치고 6차례 식사를 한 사실을 확인했고 유 전 대표를 통해 3차례 콘서트 티켓을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대가성을 입증 못 해 뇌물로 볼 수 없고, 액수가 적어 청탁금지법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버닝썬 사태와 관련한 유착 의혹으로 입건된 현직 경찰관 수는 하위직 중심으로 8명 정도다. 만약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의 추가 수사과정에서 다른 경찰관들이 연루된 유착 사실이 새로 드러난다면 경찰은 수사력과 도덕성 논란 등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이 최초로 시작된 것은 언론을 통해서였고 막연한 의혹 제기에서 시작됐다”며 “실제로 (윤 총경이 몽키뮤지엄) 사건에 대해 알아보고 수사 정보를 알려줬다는 부분은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어 “다양한 수사기법을 통해 2개월간 사실관계 확인에 최선을 다했는데 현재까지 대가성 부분은 확인된 바가 없다”며 “윤 총경 수사는 일차적으로 마무리됐지만, 아직 수사가 다 끝난 것은 아니다. 계좌 등을 여전히 들여다보고 있어서 단서가 나오면 수사를 이어가야 한다. 앞으로 눈여겨보겠다”고 말했다.
앞서 외국인 투자자 일행에게 성매매를 알선하고 클럽 버닝썬 자금을 횡령한 혐의를 받은 승리와 동업자인 유인석 전 유리홀딩스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은 전날 법원에서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 신종열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주요 혐의인 횡령 부분은 다툼의 여지가 있고 나머지 혐의 부분도 증거인멸 등 구속 사유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강신명·이철성 전 경찰청장 나란히 영장실질심사···서울경찰청은 검찰 압수수색 받아
서울중앙지법 신종열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10시 30분쯤 강신명, 이철성 전 경찰청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했다. 강 전 청장 시절 청와대 치안비서관을 지낸 박화진(56) 현 경찰청 외사국장과 김상운(60) 당시 경찰청 정보국장도 함께 영장실질심사를 받는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김성훈 부장검사)는 지난 10일 강 전 청장 등 4명에게 공직선거법 위반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강 전 청장 등은 2016년 4월 제20대 총선 당시 경찰 정보라인을 이용해 친박계를 위한 맞춤형 선거 정보를 수집하고 선거대책을 수립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공직선거법은 공무원이 지위를 이용해 선거운동 기획에 참여하거나 실시에 관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강·이 전 청장 등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인 2012∼2016년 차례로 경찰청 정보국장으로 일하면서 청와대·여당에 비판적인 세력을 ‘좌파’로 규정하고 사찰하는 등 위법한 정보수집을 한 혐의도 받고 있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는 이날 오전 서울경찰청 풍속단속계와 수서경찰서 등지에 검사와 수사관들을 보내 유흥업소 단속 관련 자료 등을 확보했다. 검찰은 서울 강남과 목동 일대에서 태국 여성을 고용해 성매매 업소 여러 곳을 운영한 혐의로 최근 구속한 박모 전 경위가 현직 경찰관들에게 정보를 넘겨받아 단속을 피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박 전 경위가 단속과 관련해 현직 경찰관들과 연락을 주고받은 기록을 확인하는 대로 관련자들을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