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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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일가족' 사건은 '동반 자살'인가, '가족 살인'인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중학생 아들 혼자 살아남고 남편, 아내, 고등학생 딸이 숨진 사건을 놓고 비속살해를 엄벌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부모가 자녀의 생명권을 좌지우지할 수 없으며, 생활고 등을 비관해 자식의 생명을 빼앗고 자신은 자살하는 형태의 사건은 ‘동반자살’이 아니라 살인죄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자식이 부모를 살해했을 때는 가중처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속살해죄의 형량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지만 수년째 관련 법안은 국회에 계류돼있다.

 

◆전문가 “아들은 대 잇게 하려고... 아버지가 딸 생명권 좌지우지”

 

지난 20일 오전 경기 의정부시의 한 아파트에서 일가족 3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안방에서 남편, 아내, 고등학생 딸이 숨져있던 현장을 최초로 발견한 건 중학생 아들로 알려졌다.

 

경찰은 부검 결과와 주변 진술 등을 토대로 생활고를 겪던 남편이 아내와 딸을 살해한 후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남편의 시신에서 자해 전 망설인 흔적인 ‘주저흔’이, 딸에게서는 흉기를 막으려 할 때 생기는 ‘방어흔’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아들만 혼자 살려둔 이유에 대해 부모의 가부장적이고 자의적인 선택이라고 판단했다. 이수정 경기대(범죄심리학) 교수는 2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추정을 굳이 해 보자면 돌아가신 부부에게는 부모님이 계신다. 같이 살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이 집이 아마 부모님이 살던 집이라는 얘기가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그 부모님에게 아들을 남겨두는 식으로 아마 생각했을 개연성이 굉장히 높다”고 추측했다.

 

부모가 자식들의 생사를 마음대로 결정한 부분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교수는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이다. 대를 이을 아들을 부모님께 맡겨 놓고 본인들만 그런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라며 “지금 우리가 ‘동반자살’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용어 자체가 굉장히 잔혹한 용어다. 어떻게 보면 딸도 타인인데 그 사람의 생명권을 아버지가 좌지우지해도 된다는 사고방식이 존재하는 것”이라 비판했다.

 

이어 “최근 가족 살인이 무척 늘었다. 2017년도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살인죄의 34%가 가족살인”이라며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비속살해 매년 30~40건... 가중처벌 법안 수년째 계류 중

 

‘고준희양 사건’, ‘원영이 사건’ 등 자녀를 학대하고 살해한 사건이나 ‘옥천 살인’, ‘시흥 일가족 살인’ 등 생활고를 비관해 자녀 등 가족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을 시도하는 사건 등이 공분을 자아내고 있는 가운데 처벌 수위가 약하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계의 정성국 박사가 2015년 발표한 ‘한국의 존속살해와 자식살해 분석’ 논문에 따르면 2006년 1월부터 2013년 3월까지 발생한 비속살해 사건은 모두 230건으로 매년 30~40건꼴이었다. 피해자녀 42%는 10세 이상이었다. 

 

현행 형법은 친속살인 중 존속살해만 가중처벌한다. 부모 또는 조부모를 살해하는 존속살해의 경우엔 사형 또는 무기징역, 7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한다. 반면 자녀나 손자녀 등을 살해하는 비속살해는 사형·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일반 살인죄와 처벌이 동일하다.

 

영아살해죄와 영아유기죄가 있지만 오히려 일반 살인죄-유기죄보다 처벌이 가볍다. 영아살해죄의 법정형은 징역 10년 이하이며 일반 살인죄는 최대 사형까지 가능하다. 영아유기죄의 최고 법정형도 징역 2년으로 일반 유기죄의 징역 3년보다 적다.

 

이에 국회에서는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 등이 자녀의 학대·살인 등을 예방하기 위해 비속살해 처벌을 존속살해 처벌과 같은 수준으로 강화하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잠자고 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