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봤자 주거침입죄로나 처벌받겠지.”
이른바 ‘신림동 원룸 미행사건’ 영상을 보고 불안에 떨던 자취 2년차인 여성 직장인 이모(31)씨는 영상 속 남성이 검거됐다는 소식에 씁쓸해하며 말했다. 이씨는 “남성이 여성의 집에 침입하려는 장면이 찍힌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고 남의 일 같지 않아 정말 무서웠다. 오죽하면 집에 들어갈 때까지 친구와 전화를 할 정도였다”며 공포감을 털어놨다. 그는 “영상 속 남성이 실제 강간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고작 주거침입 혐의 정도로 처벌하면 되느냐”며 “강간이든 살인이든 일이 터지고 나서야 처벌하면 어떻게 재범을 막을 수 있겠냐”고 말했다.
◆“1초만 늦었어도…” 미행 영상 빠르게 퍼져
지난 28일 영상 한 편이 SNS를 통해 급속도로 퍼지며 논란이 됐다. 문제의 CCTV 영상에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원룸 다세대 주택의 복도에서 한 남성이 여성의 집에 무단 침입하려는 모습이 담겼다. 영상을 보면, 오전 6시20분쯤 현관문 번호키를 열고 여성이 집에 들어가자 뒤이어 모자를 쓰고 나타난 남성이 닫히는 문을 팔로 막으려는 시도를 한다. 문이 닫힌 후에도 남성은 문고리를 잡고 두어 차례 노크를 한 뒤 복도를 서성거리며 집 앞에 머문다.
해당 영상을 공개한 누리꾼은 “1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한 상황”이라며 “이 남자 보이면 신고 부탁드립니다”라고 호소했다. 해당 영상은 온라인을 통해 빠르게 퍼져 29일에는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신림동 강간 미수범을 강력하게 처벌해주세요’라는 청원 글도 올라왔으며 29일 오후 2시 기준 2만명 넘게 동의한 상태다.
◆하루 만에 검거된 A씨 “술 취해서 그런 것”
해당 남성은 영상 게재 하루 만에 자수 의사를 밝힌 후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29일 영상 속 남성 A씨(30)를 주거침입 혐의로 검거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체포당하기 전 112를 통해 자수 의사를 전했고 저항 없이 서울 신림동 자택에서 붙잡혔다.
앞서 경찰은 전날 오후 사건을 접수한 뒤 CCTV 영상 등을 보며 A씨의 동선을 추적, A씨가 사는 건물 주변에 잠복했다. A씨는 경찰이 자신이 사는 원룸 호수를 파악하기 위해 탐문 수사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29일 오전 7시쯤 112로 전화해 자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경찰에게 “술 취해서 그런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A씨는 검거 당시 저항 없이 체포에 응했으며 주거지에서 범행 당시 착용한 옷과 모자 등 의류를 같이 압수했다”고 말했다.
◆단순 주거침입죄 처벌 가능성 높아… 변호사 “법률 개정이나 민사로 다뤄야”
‘아침 6시쯤 발생’, ‘A씨는 여성과 전혀 일면식이 없던 사이’ 등 사건이 혼자 사는 여성들에게 불러온 공포감과는 별개로 그가 강간미수죄로 처벌받을 확률은 낮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A씨가 ‘주거’의 범주에 들어가는 주택의 복도까지는 들어왔으며 여성의 현관문을 수차례 열려고 시도했기 때문에 주거침입죄는 다툴 수 있다. 경찰도 “성폭행을 시도했다는 정황이 아직 없기 때문에 주거침입 혐의를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박병규 법무법인 이로 대표변호사는 통화에서 “영상만 봤을 땐 현행법상 강간미수죄 성립은 어려워 보인다. 강간 실행의 착수가 있으려면 폭행-협박이 시작되어야 하는데 여성을 쫓아간 것만으로는 이 부분이 인정되기 어렵다”며 “단순 주거침입죄로만 처벌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박 변호사는 “지금 제도상으론 재범이 우려된다면 아쉽지만 민사적으로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거나 주거 침입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근거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덧붙였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