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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같은 스토리텔링… 역사를 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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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연출가·배우 르빠주 일인극 ‘887’ / 세계최고 연출가 천재성 입증한 무대 / 자연스러운 연기·특유의 재치 돋보여 / 무대 중앙 미니어처 통해 배경 전환 / 관객 흡입하는 독창적 비주얼 선봬 / 유년시절 보낸 퀘벡 아파트 배경으로 / 편견·차별에 대한 집단기억 이끌어내

캐나다 연출가 겸 배우 로베르 르빠주의 일인극 ‘887’은 천재가 만든 무대였다. ‘달의 저편’, ‘안데르센 프로젝트’ 등은 물론 태양의 서커스 신작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를 통해 천재성을 입증해 온 르빠주는 이번엔 지난달 29일부터 2일까지 5일간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자신의 유년시절을 회고하는 887을 통해 자신이 왜 세계 최고 연출가로 손꼽히는지 보여줬다. 일인극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다양히게 펼쳐지는 두 시간은 물처럼 자연스러운 연기와 정교한 무대로 가득 채워졌다. 객석을 흡입하는 비주얼로 짜인 르빠주의 스토리텔링은 때로는 마술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887’의 한 장면. 르빠주가 아파트 887 미니어처를 앞에 두고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 LG아트센터 제공

887은 시작부터 여느 연극과 달랐다. 객석 조명 환한 무대에 불쑥 나타난 르빠주는 심상하게 887을 만들게 된 배경을 관객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퀘벡 문학 행사에서 시 암송을 부탁받은 게 그 시작이었다. 수많은 대사를 외워온 배우였지만 시 외우기는 진척이 없었다. 결국 그는 고대 그리스 때부터 내려온다는 ‘기억의 궁전’이란 암기법까지 동원한다. 가장 친근한 장소를 떠올리고 그 속 구성요소에 외워야 하는 것을 일대일로 대입시키는 방법. 그가 택한 궁전은 어린 시절 자신의 가족을 포함해 여덟 집이 살았던 퀘벡 시티 머레이가 887번지 아파트(연립주택)였다.

르빠주는 특유의 재치와 입담으로 887에 대한 기억을 풀어놓았다. 아파트 이웃의 다양한 사연은 풍광 좋은 관광지쯤으로 여겨졌던 퀘벡과 서울의 거리감을 확 좁혔다. 그의 부친은 8살 때부터 부둣가에서 돈벌이에 나섰다가 2차 대전에 참전한 후 택시기사로 일했다. 치매에 걸린 노모와 부인, 네 자녀를 먹여살린 부친을 통해 당시 퀘벡 보통사람 삶을 실감나게 전달했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887 무대의 핵심은 중앙에 등장한 887 미니어처. 작은 컨테이너만 한 크기의 미니어처는 장면 전환 때마다 회전하며 전혀 다른 공간으로 변모했다. 때로는 아파트, 때로는 르빠주가 사는 집의 주방, 서가, 술집 등으로 탈바꿈하며 르빠주 유년시절 기억을 관객과 실감나게 공유했다. 르빠주는 다른 여러 장면도 간단한 영상을 효과적으로 넣는 방식만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비주얼과 스토리텔링을 완성했다.

마치 ‘응답하라 1997’처럼 누구나 공감할 법한 추억담으로 이어지던 무대는 르빠주가 1964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퀘벡 방문을 회상하면서 본론으로 들어간다. 옛 TV화면으로 채워졌던 여왕 방문과 달리 퀘벡 역사에서 중요한 장면으로 기록된 1967년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의 몬트리올 방문은 시가 행진 장면이 역시 미니어처로 재현됐다. “프랑스 만세”로 끝난 그의 연설은 이듬해 퀘벡해방전선(FLQ)이 등장하는 주요한 계기가 된다.

자칫 거북해질 수 있는 ‘퀘벡독립운동’이란 묵직한 주제는 르빠주 체험을 거쳐 객석에서 소화된다. FLQ 테러에 신경이 곤두선 상류층 지역에 신문을 배달하러 갔다 총구 앞에서 배달가방을 탈탈 털려야 했던 11살 소년 르빠주는 “폭탄은 내 가방이 아니라 내 머리에 있다”고 외친다. 영특한 르빠주가 입학원서를 낸 예수회 계열 사립학교는 “성적은 우수하지만 택시기사인 부친이 5년 학비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란 이유로 퇴짜를 놓는다. 르빠주의 어머니는 “네 아버지에겐 절대 말해선 안 된다. 그가 알게 되면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이라며 르빠주에게 입단속을 시킨다.

이처럼 시를 암송하기 위해 르빠주가 찾은 기억의 궁전은 결국 영국계에 밀려 하층사회를 이루며 2등 시민으로 전락한 신세였던 과거 프랑스계 퀘벡 주민의 분노로 채워진다. 이에 퀘벡인들이 정체성을 고민하고 자긍심을 찾으려 한 1960년대 ‘조용한 혁명’이 시를 암송하기 위한 열쇠였다.

연극은 시 외우기에 성공한 르빠주가 문제의 시 ‘하얗게 말하라(스피크 화이트·Speak White)’를 격정적으로 낭송하는 장면에서 절정을 맞는다. 시 제목인 ‘스피크 화이트’는 본래 백인 농장주들이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 노예 반란을 막으려고 영어를 쓰도록 강요할 때 입버릇처럼 쓰던 말. 퀘벡에선 상류층을 형성했던 영국계 캐나다인들이 공공장소에서 프랑스어를 쓰는 이들에게 경멸적인 어조로 내뱉곤 했다. 이 같은 편견과 차별을 1968년 퀘벡 시인 미셸 라롱드가 강력히 비판하는 시를 쓴 게 퀘벡 현대 시문학 탄생의 계기가 됐다.

그리고 이를 기념하는 행사에서 시 낭송을 맡은 르빠주의 경험이 887 제작으로 이어진 것이다. 르빠주는 연출노트에서 “연극이 집단 기억(collective memory)을 가장 잘 담아내는 표현의 형식”이라며 “개인적인 기억에 대한 탐구가 계급 투쟁과 정체성의 위기로 복잡다단했던 1960년대의 퀘벡으로 이끌 것이라는 것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마치 개인적인 사건에 관한 가장 아득한 기억조차도 그 일이 일어난 사회적인 맥락을 고려하지 않으면 불완전해 보이는 것 같다”이라고 밝혔다. 자신의 작은 역사(history)를 탐구하는 걸로 큰 역사(History)를 이해하려는 시도였다는 설명이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