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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국가기후환경회의와 히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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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영화를 좋아하지 않아 ‘어벤져스:엔드게임’이 흥행 돌풍을 일으키는 동안에도 시큰둥했다. 다만 주워들은 풍월로는, 어벤져스가 성공한 건 개별 히어로물의 연결고리를 통해 개연성 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졌고, 캐릭터의 고민과 갈등에 충분히 몰입할 수 있었던 덕이다. 이와 대조되는 게 ‘저스티스 리그’다.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등 최고 인지도의 영웅을 모았지만 어수선한 조합이었다는 평가였고 흥행에도 실패했다. 오는 9일 첫 국민대토론회를 앞둔 상황에서 미안한 이야기지만 ‘국가기후환경회의’(환경회의)를 보면 저스티스 리그가 오버랩되는 느낌이다.

윤지로 사회부 차장

여기 참여하는 인물의 면면을 보면 모두 슈퍼맨, 배트맨이다. 유엔사무총장을 역임한 반기문 위원장이야 말할 것도 없고, 김숙 전략기획위원장은 전 유엔대표부 대사를, 안병옥 운영위원장은 환경부차관을 지냈다.

올 초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직을 걸라’고 했던 대기환경정책관(국장)도 승진해서 국가기후환경회의 사무처장으로 옮겼다.

‘그들만의 리그’가 되지 않도록 초등학교 교장, 마을 이장, 야외 근로자 대표, 신부, 목사, 스님까지 위원으로 위촉했다. 전체 위원은 44명, 사무처 직원 46명, 여기에 5개 전문위원회에도 20여명씩 포진해 전체 인원이 200명에 이르는 거대 기구가 됐다(심지어 기구의 공식명칭도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기후환경회의’로 19글자나 된다).

그런데 이런 히어로들로 뭘 하자는 건지가 모호하다. 외교전문가를 위원장으로 뒀으니 그간 국민 눈높이에 가장 부족했던 대중국 환경외교를 하려나 했더니 그것도 아니다. 반 위원장은 중국에만 다녀오면 “중국에 책임을 묻기보다 우리부터 잘하자”는 메시지를 던져 여론을 더 자극했다.

드디어 공식 출범일(4월29일)에 이들의 미션이 공개됐는데, 바로 국민의견수렴이다. 그동안 정부에서 주관한 국민제안 공모, 국민포럼, 바로알기 정책홍보만 열 손가락이 넘는데 또 의견을 수렴한다니….

‘숙의형’으로 의견을 수렴한다는데 이 또한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지난해 정부는 ‘국민참여형 대입제도 개편’을 했다가 맹탕결론을 내린 바 있다. 찬반으로 가릴 수 없는 대입제도 개편을 국민 숙의에 맡기는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처음부터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였다. 하물며 환경회의는 다뤄야 하는 이슈도 많고, 찬반 사이에는 수많은 선택지가 있다.

환경회의가 스스로 존재감을 증명하려면 기존에 정부가 선뜻 하지 못했던 과감한 제안을 내놔야 한다. 석탄화력발전 수명연장 중단, 민간 경유차 퇴출, 전기요금 인상 이런 것들 말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이 처음이었던가?

지난 2월 대통령직속 재정개혁특위는 경유세 인상을 권고하는 ‘재정개혁보고서’를 내놨다. 화력발전 수명연장 중단은 충남도에서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다만 정부가 움직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동안 수차례 진행된 대국민 의견수렴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차고 넘치게 들어왔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의문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도대체 우리의 히어로들은 왜 뭉쳤는가. 부디 9일 토론회가 우려를 씻어주길 바란다.

 

윤지로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