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애란(39·사진)이 첫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열림원)을 펴냈다. ‘나를 부른 이름’ ‘너와 부른 이름들’ ‘우릴 부른 이름들’ 등 3부로 나누어 그의 문학을 배태시킨 성장기 환경을 비롯해 주변 문인과 문학에 대한 생각들을 두루 담아냈다.
김애란의 아버지는 이발소를 운영했고 어머니는 손칼국수를 만들어 팔면서 세 딸을 키웠다. 큰언니에 이어 쌍둥이 자매로 태어났는데 5분 늦게 나와 막내딸로 성장한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곳은 어머니의 칼국수 가게 ‘맛나당’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여러 계층과 계급, 세대를 아우르는 인간 군상과 공평한 허기를” 보았으며 “요리가 미덕이고 의무이기 전에 노동인 걸 배웠고, 동시에 경제권을 쥔 여자의 자신만만함이랄까 삶이 제 것이라 느끼는 사람의 얼굴이 긍지로 빛나는 것”도 보았다. 그 ‘맛나당’은 “어머니가 경제 주체이자 삶의 주인으로 자의식을 갖고 꾸린 적극적인 공간”이었다.
충남 서산시 대산(大山)읍 대산면에서 열아홉 살 때까지 산 김애란은 대학 3학년 때 ‘대산(大山)대학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그는 “내 등단 이력과 고향 이름이 같은 것은 순전히 우연”이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등단 무렵 고향 풍경 하나를 소개한다. 쓰레기소각장이 들어설 예정이던 동네 ‘차부’에는 ‘대산 쓰레기소각장 건립 결사반대’, ‘김○○, 조○○ 막내 자녀 애란 대산대학문학상 수상 상금 오백만 원!’이라는 대형 현수막 두 개가 나란히 걸렸는데 “그것을 잘 섞어서 읽으면 ‘대산 쓰레기 문학 애란 결사반대’로 읽히는 걸 막을 수 없었다”고 썼다.
그의 출세작 ‘달려라 아비’를 떠올리게 하는 젊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입 맞추던 밤 풍경도 ‘안아볼 무렵’에 소개한다. 비 오는 캄캄한 밤에 엄마 아빠는 입을 맞추고 있었는데 마침 염전에 ‘물 잡으러’(빗물을 빼러) 가던 동네 아저씨가 그 앞을 지나치다 두 사람과 쿵 부딪쳤고, 어둠 속에 가만히 있었더니 어눌한 충청도 말투로 ‘누구여? 누구여?’를 반복하다 장님처럼 허둥대며 멀리 달아났단다.
김연수 편혜영 윤성희 유용주 이강숙 등 주변 문인들 이야기를 비롯해 ‘두근두근 산해경(山海經)’ 같은 책 이야기도 펼친다. 중국의 오래된 이 신화집을 두고 그는 “문학 텍스트로 접할 때 가장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 중 하나”라면서 “창작자가 먹을 만한 플랑크톤이 풍부한 심해”라고 소개한다. 단편 ‘물속 골리앗 작가노트’에서는 “‘희망’이란 순진한 사람들이 아니라 용기 있는 사람들이 발명해내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결론적으로 “세상에 ‘잊기 좋은’ 이름은 없다”고 고백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