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지었으면 반성하는 게 도리다. 물론 잘못에 상응하는 정신·물질적 배상이 뒤따라야 한다. 악을 행하고 남는 것은 죄뿐이다. 죄란 도덕적으로 그릇됨을 뜻한다. 죄가 쌓이는 죄악엔 벌이 뒤따름은 당연하다. 왜. 죄인의 악행은 지워지지 않기에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악행에 대한 ‘장자’의 경고는 섬뜩할 정도다. “만약 선하지 못한 일을 해 세상에 이름을 떨친 자가 있다면, 사람은 그를 해치지 못하더라도 하늘이 죽이고 만다(若人作不善 得顯名者 人雖不害 天必戮之).”
한데 일본인, 특히 지도층은 잘못에 대해 뉘우칠 줄을 모르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로 대표되는 일본 정부가 스마트폰과 반도체 제작에 사용되는 3개 품목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고 있다.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 정치적 문제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로서 설득력이 없다.
왜일까. ‘한국 힘 빼기’다. 아니 ‘남북 분단구조 영구화’ 노림수가 번뜩인다. 일본의 ‘검은 속내’를 경계해야 한다. 근래 ‘남·북·미 판문점 회동’에서 보듯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에 바탕한 통일한국 비전을 꿈꾸는 시점에 남북통일을 막으려는 일본 극우파 지도층의 작전이 시작됐다고 본다.
일본은 한국을 비롯해 전쟁 상흔이 깊게 팬 국가들에게 경제보복이 아닌 참회를 하는 게 도리다. 참회에도 때가 있다. 곧장 해야 한다. 불교 천수경은 “사람을 죽게 하는 등 큰 죄를 저질렀으면 당장 오늘 뉘우치고 사죄하라(殺生重罪今日懺悔)”고 가르친다. 그러지 않으면 ‘어리석고 캄캄해 밝음이 없는 커다란 어둠 속에 갇힌다(癡暗無明大明)’고 경책한다.
일본의 우익조(右翼鳥)들은 ‘세계 3위’ 국력에 걸맞은 국격을 갖길 바란다. 그래야만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예우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큰사람’이다. ‘논어’는 경책한다. “군자가 용맹하기만 하고 예의가 없으면 세상을 어지럽히고, 소인이 용맹하기만 하고 예의가 없으면 강도가 된다(君子有勇而無禮爲亂 小人有勇而無禮爲盜).”
황종택 녹명문화연구원장
重 무거울 중, 罪 허물 죄, 今 이제 금, 日 날 일, 懺 뉘우칠 참, 悔 뉘우칠 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