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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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日 이끌고 제압했던 나라 … 中문화 수용하면서도 독창적 발전”

1946년 파리 '한국미술전' / 광복 직후 유럽인이 평가한 한국 / 식민사학이 기승을 부리던 시대 / 프랑스인들 직접 나서서 전시회 / 고대·중세의 한국역사 적극 소개 / 한국도자기 윤곽선 단호하고 섬세 / 작품 ‘고위관리’엔 유연·단순 극찬 / 中·日 비해 자유롭고 독립적 평가
프랑스 파리의 체르누스키박물관 내부.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한국의 회화, 공예, 장식은 심오하게 독창적인 성격이 있다.… 중국 수나라, 당나라가 한국군의 용기에 대해 칭송했으며…16세기 후반에 일본의 독재자 히데요시의 군대를 해전에서 물리쳤다. 우리는 이 장대한 기억들을 한국이 유엔군의 승리에 힘입어 해방된 바로 이때 되새겨볼 수 있는 것이다.”

2019년 한국인의 관점에서 보면 특별할 것도 없는 내용일 수 있다. 우리의 문화,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일깨우는 기억이자 평가다. 하지만 1946년 3월 프랑스의 한 지식인이 쓴 글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프랑스 파리의 체르누스키박물관은 1946년 ‘한국미술전’을 열며 당시 박물관 디렉터의 입을 빌려 한국의 역사, 문화에 대해 적극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국제질서를 이끄는 선진국 중 하나인 프랑스의 시선으로 보면 당시 한국은 식민지에서 벗어난 지 1년이 안 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일 뿐이었다. 한국사를 극도로 폄하한 ‘식민사학’이 기승을 부릴 때라는 점까지 감안하면 이채롭다 싶을 정도의 평가다.

광복 직후 프랑스인들이 직접 나서 개최한 가장 이른 시기의 한국 전통문화 전시회이자 일본을 이끌고, 제압했던 고대·중세 역사를 적극적으로 소개한 점이 특히 눈길을 끈다.

 

“쇼토쿠 태자, 한국인 스승에 둘러싸여 지내”

 

14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지난 6∼7월 체르누스키박물관 소장 한국문화재 조사에서 확보한 자료 중 한국미술전의 기획의도, 전시품 등을 가장 잘 설명한 것은 르네 그루세 디렉터의 전시회 브로슈어 서문, 잡지 ‘프랑스 일리스트레’의 전시회 소개 기사다.

1946년 프랑스 체르누스키박물관에서 열린 ‘한국미술전’의 브로슈어 표지.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두 글은 한국이 일본에 선진문화를 전하고, 대륙을 향한 일본의 야욕을 좌절시킨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르네 그루세는 “중국의 불교 문명과 분파들을 다시 일본에 전파한 것이 바로 한국”이라며 “한국의 개별적 특성과 고유한 성격을 덧붙여서 전파했으므로 일본 초기 불교미술의 많은 부분이 한국 미술에서 연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사에서는 이런 시각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고대 일본의 정치, 문화, 종교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쇼토쿠 태자에 대해 “고구려나 백제에서 온 승려, 학자, 예술가에게 둘러싸여 지냈다”고 서술했다.

임진왜란을 사례로 일본의 대륙 침략 시도를 막아냈다는 점도 강조했다. “독재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군대를 해전에서 물리쳤다”는 부분은 전쟁 발발의 원인, 이순신 장군의 활약 등을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기사는 “일본의 대륙 침략과 정복의 기도를 몇 세기에 걸쳐 물리쳤다”고 적었다.

중국과의 관계는 중국문화를 수용하면서도 독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비중있게 썼다. “한국 장인이나 예술가들에게는 타고난 자연스러운 능숙함이 있는데, 그저 중국의 모방이 아니라 창조적이고 가치있는 개성적 작품을 만들어 냈다”고 밝혔다. 이런 이유로 박물관은 한국의 광복이 “파리시민들에게 한국미술의 독창적인 가치와 빛나는 영향을 상기시킬” 적기임을 천명했다.

946년 프랑스 체르누스키박물관에서 열린 ‘한국미술전’을 소개한 잡지의 지면.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개별 유물 중에는 도자기에 대해 “윤곽선이 갖는 순수함의 추구가 느껴진다. 매력적이고 단호하며 섬세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작품들”이라고 평했다. 자크 드브레 소장작 ‘고위관리’라고 소개한 초상화를 두고는 “노인의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지혜, 우수에 어린 위엄, 과거에 침잠한 듯한 시선을 화가가 얼마나 확실하고 유연하며 단순하게 표현했는지 찬탄할 수밖에 없다”고 극찬했다. 이 외에 회화, 병풍, 칠기, 곡옥, 서적 등을 설명한 뒤 “한국미술은 중국미술보다 덜 퇴폐적인 세련됨, 일본미술보다 더 자발적인 소박함을 가지고 있어 그들에 비해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상을 준다”는 종합평가를 내놓았다.

 

기획부터 전시품 확보, 프랑스인 주도


한국미술전은 현재까지 확인된 서구 선진국에서 개최된 한국 관련 전시회 중 시기가 가장 빠르고, 현지인들이 각지에 흩어져 있는 한국 유물을 모아 자발적으로 개최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한국 전통문화를 서구에 소개한 첫 전시회는 ‘마스터피시스 오브 코리안 아트’(Masterpieces of Korean Art)로 알려져 있다. 국립박물관, 덕수궁미술관 등이 소장한 명품들을 모아 1957∼1959년 미국 8개 도시를 돌며 개최됐다. 유럽으로 좁혀보면 체르누스키박물관의 1961년 ‘한국보물전’이 처음으로 간주돼 왔다.

한국미술전은 이 전시회들보다 10년 이상 앞서 개최됐다. 재단이 확보한 자료에는 전시회 준비 과정을 보여주는 편지, 메모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중에는 ‘유물 전시를 도울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는 1945년 10월 17일의 편지가 있다. 광복 후 불과 두 달 정도 지난 이즈음 전시회 준비가 이미 진행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한국 유물 소장자에게 보낸 편지, 전시회를 기획한 마들렌드 다비드, 칼텐마크를 비롯한 박물관 관계자들이 한국 역사, 문화를 공부한 흔적 등도 있다. 훗날의 한국 관련 전시회가 한국의 기관, 전문가 등이 주도하고, 한국에 소장된 유물을 가지고 열렸다는 점과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다.

지난 6, 7월 진행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프랑스 현지조사에서 차미애 팀장(오른쪽) 등 전문가들이 체르누스키박물관의 한국 관련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재단 차미애 팀장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우리 문화재가 외국으로 유입되어 어떻게 활용, 유통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앞으로 보다 구체적인 연구가 진행되면 한국미술전의 목적, 출품작의 현황 등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장상훈 과장은 “학자들의 시각도 국제정세에 영향을 받기 마련인데 신생독립국인 한국을 주제로 전시를 했다는 것은 매우 발빠른 대응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