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당시 상황보고 시점을 조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기춘(80·사진)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부장판사 권희)는 14일 허위공문서작성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실장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함께 재판에 넘겨진 김장수·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는 나란히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대통령이 사고 당일 보고를 끊임없이 실시간 받아 상황을 제대로 파악했는지 상당한 의문이 든다”며 “따라서 피고인이 당시 대통령이 실시간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국회에 낸 서면답변은 허위 내용을 포함하고 있고, 피고인도 그러한 사정을 인식했다고 판단돼 유죄로 인정한다”고 판시했다. 또 “세월호 사고라는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대통령이 제때 보고받지 못했다는 게 밝혀질 경우 논란이 될 것을 우려해 허위공문서를 작성해 행사한 것은 청와대 책임을 회피하고 국민을 기만했다는 점에서 책임이 가볍지 않다”고 질타했다.
다만 “피고인은 고령으로 건강이 좋지 않고, 별건으로 기소돼 장기간 실형을 선고받아 구속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면서 “개인의 이익을 위해 범행을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들이 나란히 집행유예와 무죄를 선고받자 유족들은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반발했다.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4·16연대)’는 이날 입장을 내고 “세월호 참사의 최고 책임자인 박근혜를 보호하기 위해 대국민 사기극을 일삼고 국가문서까지 조작해 진실을 감췄던 자들에게 무죄를 줄 수 있단 말이냐”며 재판부를 규탄했다.
이날 유족들은 ‘부모이기에 포기할 수 없다’고 적힌 조끼를 입고 법원에 들어왔지만, 방청권을 받지 못해 입정하지 못했다. 이들은 법정 밖에서 “김기춘 나와라”, “내 새끼 살려내라”라고 크게 외치며 법정 출입문을 두드렸다. 이 때문에 선고문을 읽던 재판장이 몇 차례 낭독을 멈추기도 했다.
김 전 실장 등은 세월호 참사 보고와 관련해 2014년 7월 국회 서면질의답변서 등에 허위 내용의 공문서 3건을 작성해 제출하는 등 세월호 보고를 조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답변서에는 ‘비서실에서 실시간으로 시시각각 20~30분 간격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박 전 대통령은 사고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는 내용이 기재된 것으로 조사됐다.
유지혜 기자 kee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