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동의간음죄 신설은 과잉범죄 폐해를 일으킨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청문회를 앞두고 각종 의혹 검증과 함께 아동·청소년 보호 문제를 둘러싼 견해도 눈길을 끌고 있다. 당장 조 후보자는 여성계가 촉구해 온 ‘비동의간음죄 신설’과 ‘미성년자 의제강간죄 기준연령 상향’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친 바 있다. 법무장관으로 취임하면 여성계와 마찰이 빚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조국 “비동의간음죄 신설은 과잉범죄화 우려”···여성계는 비동의간음죄 신설 촉구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조 후보자는 지난해 말 출판한 책 '형사법의 성(性)편향 (2018년 전면개정판)'에서 비동의 간음죄와 미성년자 의제강간죄 기준연령 상향에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2003년 3월 출간된 ‘형사법의 성편향’은 조 후보자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재직 중이던 2018년 9월 전면개정판이 출판됐다. 해당 개정판에서는 비동의간음죄와 미성년자 의제강간죄 기준연령 상향 내용 등이 추가됐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여성인권단체 중심의 여성계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성관계를 한 경우 폭행이나 협박이 없어도 처벌하는 비동의간음죄 도입을 촉구하고 있지만 조 후보자는 비동의간음죄 신설이 자칫 과잉범죄화 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최근 ‘미투 운동’이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비동의간음죄 신설 주장이 소개됐지만 여성이 경험하는 모든 비동의적 성교를 범죄로 규정하자는 제안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 후보자는 그 이유로 “범죄 행위자의 처벌 여부가 전적으로 피해자 의사에 따라 좌우된다는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비판이 있다”며 “비동의간음죄에서 ‘동의’에 대한 판단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합의된 성관계 이후 (서로) 관계가 나빠져 ‘비동의간음‘ 고소가 이뤄지는 경우도 충분히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또 “폭행과 협박, 위력은 없었지만 동의없이 이뤄진 성교가 범죄로 처벌되는 것은 과잉범죄화의 폐해를 바로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강간죄의 폭행·협박의 요건을 완화하는 방식 등으로 처벌되지 않는 비동의적 성교의 범위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 후보자의 견해는 비동의간음죄 신설을 촉구하는 여성계 주장과 배치된다. 현행 형법 297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성계는 형법 297조는 미투 등 폭행을 동반하지 않은 권력형 성폭력을 막을 수 없는 만큼,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성관계를 한 경우 폭행이나 협박이 없어도 처벌하는 비동의간음죄 도입을 주장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2017년 강간 피해를 호소한 20∼64세 여성 124명을 상대로 한 상담 사례를 분석한 결과 상담건수의 절반 가량인 54건(43.5%)이 현행 강간죄의 폭행·협박 요건에 미치지 못했다. 지난해 8월 자신의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면서 이런 주장이 더욱 강하게 제기됐다.
◆조건없는 미성년자 의제강간죄 기준연령 상향도 부정적
조 후보자는 책에서 미성년자 의제강간죄 기준연령 상향에도 부정적 의견을 내비쳤다. 우리나라 형법 305조는 만 13세 미만의 아동에 대해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는 합의하에 이뤄진 성관계라도 처벌하도록 규정했다. 영국과 미국 등 상당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은 미성년자 의제강간죄 기준연령을 만 16세로 설정했다. 이에 여성단체는 우리나라도 의제강간죄 기준연령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한 여러 건의 형법 개정안들도 국회에서 발의된 상태다.
조 후보자는 ‘무조건 의제강간죄 기준연령 상향’에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의제강간죄 기준연령은 (나이란) 생물학적 판단이 아닌 사회문화·사회규범적 판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만 13∼16세인) 중학생 미성년자의 경우, 국내 현행법은 일률적으로 비범죄화하고, 상당수 OECD 국가는 일률적으로 범죄화하고 있지만 모두 구체적 사안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을 원천봉쇄하고 있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형법 305조 2항을 신설해 양육·교육 관계로 인해 자신의 보호를 받는 만 16세 미만과의 합의 성교를 범죄화하고, 위에 해당하지 않은 경우는 (만 13∼16세 아동이라도) 비범죄화가 맞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 후보자는 만 16세 이상의 미성년자와 합의 성교라도 ‘우월적 지위를 이용’과 ‘신뢰관계의 이용’ 등 요건을 설정해 범죄화하자는 주장은 ‘명확성의 원칙’에 위반되는 만큼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조 후보자의 이 같은 주장은 여성단체가 촉구하는 전면적인 미성년자 의제강간죄 기준연령 상향 주장과 대립한다. 여성단체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의 성적 판단능력이 크게 다르지 않고, 성인 가해자로부터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해 의제강간죄 기준연령을 현행 만 13세에서 16세로 조건 없이 상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향후 ‘조국의 법무부’가 여성단체와 충돌할 가능성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한 여성·아동단체 관계자는 “성인은 정신적으로 미숙한 아이들의 성(性)을 지켜줘야 하는 의무가 있다”며 “현행 미성년자 의제강간죄 연령을 조건 없이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후보자는 성범죄 피해자 보호를 위해 지난해 법무부 권고에 따라 성폭력 수사 진행 중 피해자에 대한 무고죄 수사를 잠정 중단하도록 한 것에도 부정적 견해를 드러냈다. 그는 책을 통해 “선(先) 성범죄, 후(後) 무고죄 판단을 제도화하는 것은 온전한 균형 잡기가 아니다”며 “무고 고소장 접수 이후 객관적 증거에 의해 성폭력 범죄에 대한 허위사실임이 확인됐거나 수사기관이 무고에 대해 인지한 경우는 무고죄에 대한 수사를 바로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