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용이 될 수 없으며 또한 그럴 필요도 없다… 더 중요한 것은 개천에서 붕어·개구리·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조국(54)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과거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 일부다. 2012년 ‘부익부 빈익빈’, ‘10대 90 사회’를 비판하며 올린 조 후보자의 이 글은 7년 후 조 후보자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그의 딸 조모(28)씨가 대다수 학부모와 고등학생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스펙’을 쌓고, 그 스펙을 활용해 유명 대학에 진학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본인은 특권층의 혜택을 다 누리면서 많은 국민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겼다”는 비판에 직면한 모양새다.
◆2주짜리 인턴이 논문 1저자… “부적절” 지적
22일 조씨가 2010학년도 고려대 수시 ‘세계선도인재 전형’에 지원하며 제출한 자기소개서를 살펴보면 조씨는 자소서에 세 가지 주요 이력을 기재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에는 조씨가 제1 저자로 이름을 올려 논란이 된 단국대 의대 논문도 포함돼 있다. 이 세 가지 이력 모두 일반 고교생은 물론 학업 우수자들도 재학 중에 쌓기 어려운 스펙이란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가장 관심을 모은 건 소아병리학 관련 논문이다. 조씨는 한영외고 2학년이던 2008년 12월 단국대 의대 연구소에서 작성된 ‘출산 전후 허혈성 저산소 뇌병증에서 혈관내비 산화질소 합성효소 유전자의 다형성’이란 제목의 영문 논문에 제1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학계에선 “고교생이 단기간에 이해하고 다룰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조씨가 당시 2주가량 인턴을 한 뒤 논문의 제1 저자로 이름을 올린 것을 두고 이 논문을 주도한 단국대 의대 교수는 언론에 “해외 대학을 가려고 한다기에 선의로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열심히 참여한 게 기특해서 1 저자로 했다”는 다소 수긍하기 어려운 답변을 내놨다. 단국대는 이날 오전 윤리위원회를 열어 이 논문의 적절성에 대해 논의했다.
◆일정상 도저히 불가능한 활동도 자소서 기재
조씨는 3학년이던 2009년 여름방학에는 아버지인 조 후보자가 재직 중인 서울대 한 교수의 지도로 물리학 관련 상을 받기도 했다. 한국물리학회 여성위원회가 숙명여대에서 개최한 ‘여고생 물리캠프’에서 조씨는 ‘나비의 날개에서 발견한 광자 결정구조의 제작 및 측정’이라는 연구과제를 수행했고, 이 과제로 장려상을 받았다. 이 역시 자소서에 기재됐다.
하지만 조씨가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 열린 국제조류학회에도 논문을 발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인다. 일정상 도저히 불가능한 스펙이라는 것이다. 조씨가 공주대 생명공학연구소 인턴십을 통해 참가한 이 논문도 마찬가지로 자소서에 담겼다. 이들 사례를 포함해 조씨가 고교 재학 중 여러 차례 인턴 생활을 한 것으로 나타나자 ‘스펙 끝판왕’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그 중 하나가 유엔인권정책센터의 ‘2009 제네바 유엔인권 인턴십’이다. 사단법인 유엔인권정책센터가 모집한 이 프로그램은 2009년 1월26일부터 2월6일까지 12일 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엔인권이사회 자문위원회 등 유엔의 주요 인권 회의를 참관한 뒤 그 경험을 발표한 활동이다. 해당 센터 공동대표인 서울대 사회학과 정모 교수는 조 후보자가 국가인권위원회 국제인권전문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할 당시 이 위원회에도 소속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법무부 인사청문회준비단 관계자는 “조 후보자가 선발과정 등에 영향력을 행사한 사실이 없다”고 설명했다.
◆‘조로남불’ 비판도… 曺 “‘나 몰라라’ 않겠다”
논란 초기 조 후보자 측은 조씨가 지원한 전형에선 자소서 등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밝혔으나, 언론 보도를 통해 조씨가 자소서에 논문 이력 등을 기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다시 입장문을 내 “자소서에는 간단히 기재했으나 논문 원문을 제출한 사실은 없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곳곳에서 ‘조로남불’(조국+내로남불)이란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보수 성향 학부모 단체인 전국학부모단체연합은 이날 오전 조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이 있는 서울 종로구 적선현대빌딩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빽 없는 학부모는 가슴 치며 분노한다”며 조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했다.
조 후보자는 이날 출근길에 “저와 제 가족이 사회에서 받은 혜택이 컸던 만큼 가족 모두가 더 조심스럽게 처신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며 “집안의 가장으로, 아이의 아버지로 더 세심히 살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제도가 그랬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며 나 몰라라 하지 않을 것”이라며 “국민 여러분의 따가운 질책을 달게 받겠다”고 덧붙였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