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풍납1·2동은 전형적인 저층 주거지다. 이곳이 한성백제의 자취가 응집된 유적임을 느끼려면 각종 표지판들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그러나 2∼3년 후에는 풍납동에서 2000년 고도 서울의 역사를 완연히 느낄 수 있게 된다. 서울시는 삼국시대 백제의 살림집과 성 주변의 해자 재현, 성벽 유적 개방 등을 통해 한성백제 왕성인 위례성(한성)의 위용을 보여줄 계획이라고 22일 밝혔다.
◆서울은 2000년 역사도시
백제는 하남위례성(한성)에서 건국돼 678년간 이어졌다. 한강 유역에 있던 시기는 약 500년에 달한다. 대중에 백제의 고장으로 알려진 웅진(공주)으로 천도한 건 기원 후 475년이 돼서다. 한성은 남성·북성으로 나뉘는데, 학계에서는 풍납1·2동을 둘러싼 풍납토성이 북성, 그 아래 몽촌토성을 남성으로 추정한다.
풍납토성은 적의 공격을 거뜬히 방어할 만했다. 둘레 3.7㎞, 높이 15m에 성벽 밑변 너비가 43m로 추정된다. 현재 풍납동에서 이 같은 웅장함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세월이 흐르며 땅이 점점 높아져 성벽 대부분이 흙 속에 묻힌 탓이다. 풍납토성은 일제강점기인 1925년에 처음 알려졌지만,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건 1997년에 이르러서다. 당시 연립주택을 허물던 중 백제 유물이 발견됐고, 수도 서울의 역사는 조선시대에서 2000년 전으로 확장됐다.
풍납동에 살림집이 들어찬 것도 이 지역에서 백제의 자취를 느끼기 힘든 이유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금까지 풍납동 발굴 과정에서 소요된 보상비만 약 8000억원이고, 풍납토성 전 지역을 보상하려면 10조원 이상이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풍납토성 전체 발굴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셈이다. 이 때문에 서울시와 문화재청은 발굴과 주거지 재생을 병행하고 있다.
◆왕궁 터 중심 개발·보존 병행
풍납토성 복원의 중심은 경당역사공원을 둘러싼 2-3권역이다. 경당역사공원은 왕성터로 추정된다. 제사용으로 보이는 12마리 상당의 말뼈 등이 발견됐다. 시는 왕궁터 주변 2-3권역을 차례로 매입해 ‘2000년 역사도시’ 서울을 느낄 수 있는 유적으로 새단장할 계획이다.
백제인의 생활상을 체감할 초가집도 재현한다. 백제 집자리가 있는 백제역사문화공원에 들어선다. 백제역사문화공원은 현재 잔디 사이에 널찍한 주춧돌이나 집터가 드문드문 놓여 있어 고대인의 숨결을 느끼기 힘든 상태다. 초가집이 들어설 집자리는 유독 넓은 출입구에 원룸 두 채가 맞닿은 형태다. 부뚜막, 아궁이 등도 갖췄다. 시는 이곳에 백제시대 곡식, 그릇 등을 재현할 계획이다. 올해 기본설계를 마치고 내년 초에 착공한다. 다만 사방이 트인 공원이다 보니 화재 예방, 무단점거 방지 등 관리가 쉽지 않은 점이 문제다.
풍납토성 전망대 주변에는 적의 침입을 막았던 해자가 복원된다. 길이 50m, 폭 20m로 0.5m 깊이로 물도 채운다. 원래 해자는 4.5m 깊이였을 것으로 추정되나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얕게 만든다. 빠르면 내년 상반기에 착공, 연내 준공을 목표로 한다.
서성벽(서쪽 성벽)에서는 풍납토성의 축성법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발견된 성 출입구(문지)에 보호각을 설치해 전시관을 만든다. 2021년 공사에 들어간다. 풍납토성은 나무판 내에 흙을 다져넣어 시루떡처럼 쌓는 판축법으로 축조됐다. 풍납토성의 높이는 15m로 추정되지만, 현재는 안전문제 때문에 6m 깊이까지만 발굴하고 있다. 더 깊이 파더라도 점점 땅이 밀려들어오기 때문이다. 서성벽이 공개되면 일부나마 백제인의 위용을 확인할 수 있다.
문화재청은 2048년까지 풍납토성 발굴·복원·정비작업을 벌일 계획이다. 올해부터 2048년까지 전체 소요 예산은 1조6326억원이다.
송파구 관계자는 “풍납토성 발굴이 완료되면 숨겨진 백제 역사가 국민에게 더 잘 알려지는 계기가 되고 서울의 역사가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며 “서울이 고대국가의 성읍도시로서 면모를 갖추게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송은아 기자 sea@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