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거나 훼손될 위기에 놓인 제주의 대지 위에 선 사람들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제주는 어떤 의미입니까? 여러분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인터뷰 내용을 편지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저에게 제주는 생명입니다.”
제 고향 성산읍 난산리는 천 년의 역사를 가진 마을입니다. 이 마을에서는 병풍처럼 펼쳐진 오름 군락과 바다, 그리고 한라산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슬프게도, 아름다운 곳이지요. 4년 전 우리 마을에 새로 공항이 들어선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TV를 통해 그 사실을 접했습니다. 애초부터 동의나 의견을 구하는 절차는 없었습니다. 이대로라면 저와 제 어머니가 사는 집터 위로 활주로가 깔리고, 마을 주민 80%가 강제 추방당하는 신세가 됩니다. 행정가들은 그저 이 대지를 ‘개발되지 않은 땅’ 정도로 여기지만, 이곳엔 오랜 세월 독자적인 삶의 방식을 간직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삶의 본질을 훼손당하고 있습니다. 조상 대대로 일궈온 농토는 비싼 값에 팔리는 부동산이 됐고, 대지를 보호하는 데 앞장서야 할 농민들은 욕망의 부채질 앞에 찢어져 나뉘었습니다. 사람들이 지쳐서 이 땅을 버리고 떠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제 고향의 평화와 생명을 지키고자 합니다.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총 80일 동안 단식을 감행했습니다. 마을의 생명을 위해서라면 제 목숨을 내놓을 수도 있습니다. 삶의 근간을 흔드는 폭력에 침묵하지 않겠습니다.
#“저에게 제주는 ‘숨 쉬는 숲’입니다.”
저는 비자림로 숲에서 말합니다. 여기는 생명이 숨 쉬는 공간입니다. 숲이 사라진다는 건 곧 숨을 쉴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미 수많은 나무가 죽었습니다. 제주도는 겉으로 자연과의 공존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면서, 실제론 숲을 파괴하는 데 행정력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숲의 질서를 부정하고 모독했습니다. 지역 정치가는 ‘자연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말을 앞세우며 숲의 가치를 평가 절하했습니다. 자연은 정치적 수싸움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본질적으로 잘못된 환경영향평가를 지적합니다. ‘계획노선에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 각종 보호 야생 동식물의 서식지는 없는 것으로 조사됨’이라고 평가서에 기록됐지만, 실제로 비자림로 숲에는 수많은 법정보호종이 깃들어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숨을 지키고자 숲으로 걸어 들어갔고, 지금은 뭇 생명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습니다. 올바른 방식을 요구합니다. 오름과 숲과 하천은 분리되어 있지 않고 본디 연결돼 있습니다. 인간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서식지를 파괴하고 수많은 생명을 궁지로 내몬 뒤에, ‘저감 방안’을 논하는 것은 기만에 가깝습니다. 같은 대지 위에 함께 살아가는 소중한 존재들을 지키고 싶습니다. 더는 베지 마세요. 우리가 사랑하는 숲입니다.
#“저에게 제주는 마지막 보루입니다.”
저는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비자림로 숲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조천읍 선흘2리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마을 조천읍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거문오름이 속한 지역이며 선흘곶자왈과 동백동산습지를 끼고 있습니다. 지난해엔 세계 최초 람사르습지 도시로 지정됐습니다. 조천읍은 제주 안에서도 특별한 곳입니다. 서울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왔을 때, 가장 좋았던 건 제대로 숨 쉬며 살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 숲을 선물해줬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기뻤습니다. 자연과 일상이 온전히 연결된 땅에 뿌리를 내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대명 그룹이 마라도 면적 두 배 규모의 동물원·숙박시설을 짓겠다고 나섰습니다. 마을에서 채 1㎞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사자와 기린, 코끼리, 코뿔소 등 23종의 동물 500여마리를 방목한다는 것입니다. 제주도는 이 사업을 조건부 승인했습니다.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파괴하고선 그 자리에 아프리카 초원 등지에서 사는 동물을 들여오는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자연의 질서를 깨트리지 않는 건 오래된 지혜입니다. 아이들에게 자연이 개발의 대상이 아님을,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갖는 가치를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지절대는 새소리를 듣고, 학교에 가고, 숲길을 걷는 아름다운 일상을 지켜 주세요.
제주=글·사진·동영상 하상윤 기자 jonyy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