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고강도 부동산 규제 대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올해 집값 향방의 주요 변수로 풍부한 유동자금과 기준 금리, 보유세 강화 등을 꼽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새해 부동산 정책 역시 집값 안정화를 위한 전방위적인 규제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정부의 초고강도 규제 대책 시행 가능성이 커지면서 정부와 시장, 매도자와 매수자, 유주택자와 무주택자간 힘겨루기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할 전망이다.
무엇보다 올해 집값 향배의 가장 큰 변수는 정부의 고강도 대출 규제에 구애 받지 않은 풍부한 유동자금이다. 시중 유동자금이 1500조원에 달한다. 은행 대출 없이도 부동산에 투자할 자금 여력이 충분하다는 얘기다.
저금리로 투자처를 잃은 풍부한 유동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증시 등 금융시장 전망이 어두운 상황에서 비교적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아파트로 흘러가 집값 상승을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동자금, '안전자산' 아파트로 유입되나?
45조원에 달하는 토지보상금도 변수다.
부동산정보업체 지존에 따르면 올해 약 45조원에 달하는 토지보상금이 풀릴 것으로 보인다. 남양주 왕숙·하남 교산·인천 계양 등 3기 신도시와 수도권광역급행철도인 GTX 등 대규모 교통망 신설 계획으로 수도권에서만 절반이상 보상이 이뤄진다.
통상 대규모 토지보상금이 풀리면 이 돈이 다시 부동산시장으로 유입돼 서울 강남 지역이나 개발지역 주변 땅값과 집값이 들썩였다.
2006년 노무현 정부 당시 판교신도시 개발 등으로 인해 토지보상금 29조9000억원이 풀렸다. 토지보상금의 37.8%인 11조3000억원 가량이 부동산 거래에 다시 쓰였다. 지방에서 풀린 보상금 중 8.9%가 수도권 부동산시장에 유입되면서 수도권 땅값과 집값을 건드렸다.
이명박 정부의 '보금자리주택'과 박근혜 정부의 '행복주택' 조성 당시에도 토지보상금이 다시 부동산에 유입돼 주변 땅값이 상승했다. 넘쳐나는 시중 유동자금에 천문학적인 토지 보상금까지 풀리면서 자칫 부동산시장 과열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정부는 시중에 풀리는 유동성을 줄이기 위해 대토보상(다른 지역 토지 배분)을 확대하고, 공모 리츠(REITs·부동산투자신탁)나 부동산 펀드에 세금 혜택을 늘리고 있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수십조원 토지보상금 부동산시장 유입 가능성
정부는 지난해 12·16 부동산대책으로 15억원이 넘는 초고가 주택 구입을 위한 담보대출과 9억원 초과 주택 구매·보유자의 전세자금대출까지 차단했다.
지난해 9·13 대책으로 1주택 이상 가구의 주택담보대출을 사실상 차단했지만, 하반기 주택시장이 다시 달아오르며 집값이 급등한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강력한 대출 규제로 실수요자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금지해 투기 수요를 근본적으로 차단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저금리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 지난해 11월 신규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은행권 신규 취급액 기준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2.45%로, 전달보다 0.05%p 하락했다. 이는 한국은행이 관련 통계를 집계한 지난 2001년 9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금융업계에서는 올해 1분기 중 기준금리 추가 인하를 전망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연 1.25%를 낮췄지만, 정책금리 인하 효과가 나타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미국의 연방준비제도가 당분간 기준금리를 1%대인 현재 수준을 유지할 뜻도 밝혔다.
◆빚 내서 집 사지 말라고 '경고 메시지' 날린 정부
주택시장에선 정부의 고강도 규제 대책으로 주택담보대출을 포함한 가계대출이 줄고, 부동산으로 유입되는 것을 차단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내년 4월 총선 결과와 6월 다주택자 양도세 한시적 면제가 끝나는 시점 등이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고가 주택이나 다주택을 중심으로 보유세 부담이 늘어난다. 정부가 지난해 12월15일 내놓은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의 핵심은 세(稅) 부담 강화다.
신규 대출 금지와 기존 대출 회수를 비롯해 각종 세금의 기준인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높이기로 했다. 내년부터 아파트 등 공동주택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시세 9억원~15억원은 70%, 15억원~30억원은 75%, 30억원 이상은 80%까지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이럴 경우 강남과 마포 등 시세가 급등한 지역의 공시가격은 올해 대비 20~30%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주택자의 경우 종부세와 재산세를 더한 보유세가 대폭 오른다.
공시가격 현실화는 다주택자뿐만 아니라 실수요 주택 보유자까지 보유세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부담이지만, 보유세 부담이 늘면 무분별한 투기 확산을 차단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다주택자 6월까지 양도세 중과 회피 매물 내놓을까? 의견 분분
한편 12·16 대책으로 15억원 초과 초고가 아파트의 대출이 막힌 상황에서도, 가격을 내린 급매물을 중심으로 일부 거래가 이뤄져 매입 주체와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이달 17일부터 현재(30일 기준)까지 서울 지역에서 거래 신고된 15억원 초과 아파트는 총 30건으로 집계됐다. 전체 서울 아파트 신고 건(492건)의 6% 정도를 차지한다.
주택거래 신고 기한이 60일이어서 향후 신고 건수가 더 늘어날 수 있지만, 이를 고려해도 초고가 아파트 거래는 대책 이후 확연히 줄어든 모습이다.
집계가 마무리된 10월 신고 건을 보면 당시 서울에선 총 1만1506건의 아파트가 거래됐는데, 이 중 15억원 초과 아파트는 무려 1273건으로 전체의 11.1%를 차지했다. 앞선 9월에는 총 7000건 중 15억원 초과가 895건으로 12.8%였다.
업계에선 초고가 아파트 거래가 줄어든 것에 대해 대출을 이용한 투기 수요의 진입을 원천 봉쇄한 정부 대책이 효과를 나타낸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12·16 대책에서 초고가 아파트를 서울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보고 강도 높은 규제를 가했다. 특히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투기 대출 수요를 막기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아예 금지했다. 자금조달 증빙서류 제출을 의무화해 편법·불법 증여의 진입이 어려워지도록 했다.
◆일부 호가 낮아진 매물 나오자마자 고액자산가들 현금으로 사들여
일각에선 초고가 아파트에 대한 대출이 완전히 끊긴 상태에서도 적지만 일부 거래가 이뤄졌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나타내기도 한다.
대책 이후 이뤄진 15억원 초과 아파트 30건의 실거래 내역을 보면 대부분이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에서 거래됐다. 강남구가 16건으로 가장 많고, 서초구 9건, 송파구 2건이다. 그 밖에 강동구와 영등포구, 성동구에서 각각 1건씩 거래됐다.
전문가들은 대책 이후 단기 급등했던 단지를 중심으로 호가를 낮춘 매물이 나오자 이를 눈여겨 뒀던 고액 자산가들이 매물을 사들인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까지 신고된 15억원 초과 아파트의 경우 대부분 종전 호가 보다 최대 1억~2억원 가량 떨어져 거래됐다. 대책 이후 가장 비싸게 팔린 아파트는 서초구 대장주인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면적 164㎡ 주택형으로 지난 25일 43억8000만원에 팔렸다. 대책 전에는 45억원 이상을 호가했다.
두번째는 강남구 대치동 개포우성2차 전용 127㎡로 21일 34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대책 전 호가는 35억원을 넘었다. 두 아파트는 현재 전세를 끼더라도 20억원 가량의 현금을 가져야 살 수 있다.
이밖에도 강남구 도곡동 렉슬 아파트 전용 84㎡ 주택형은 지난 23일 직전 최고 거래가(24억8000만원)보다 낮은 24억3000만원에, 개포동 래미안블레스티지 전용 99㎡도 23일 종전 최고가(28억원)와 호가(29억원 이상) 보다 낮은 27억원에 팔렸다.
고액 자산가의 경우 대출과 세금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고가 주택의 희소성과 사생활 보호를 중시하기 때문에, 시장의 규제 상황과 관계없이 급매물을 중심으로 매입 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