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초연 당시 최고의 창작 뮤지컬이란 찬사를 들었던 ‘웃는 남자’ 무대가 다시 시작됐다. 뚜렷한 주제와 화려한 무대, 귀에 쏙 들어오는 노래와 배우들의 열연이 합쳐진 강렬한 색채의 프레스코 같은 작품이다.
좋은 뮤지컬로서 ‘웃는 남자’의 가장 큰 자산은 대문호 빅토르 위고 원작 특유의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회 비판 정신이다. 부귀를 빼앗기 위해 귀족 가문 상속자인 갓난아이를 유괴하고, 인신매매단은 귀족 여흥을 위해 아이를 기이한 외모로 만들어버리는 비정한 17세기 영국 사회가 작품 배경이다. ‘상위 1%’라고 스스로를 자부하며 서민을 착취하고 자신들의 부만 공고히 쌓아 올리는 귀족 사회의 위선과 버려진 아이들을 중심으로 모인 유랑극단의 가족애가 대비된다. 출생의 비밀이 풀리면서 주인공 그윈플렌은 상원에 출석해 서민에 대한 사랑과 특권층의 사회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호소하나 돌아오는 건 조소뿐이다. 혁명이 불가피했던 시대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한 대문호의 외침이 여전히 정의와 평등이 요청되는 지금 뮤지컬에서 되살아난다.
선명한 주제를 지닌 ‘웃는 남자’를 탁월한 뮤지컬로 만든 건 노래와 무대다.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은 ‘지킬앤하이드’ 등의 성공에서 얻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뮤지컬 작곡가’라는 수식어가 과찬이 아님을 입증했다. 그윈플렌을 처음 만난 우르수스가 부르는 ‘세상은 잔인한 곳’, 데아와 유랑극단 여성들이 함께 부르는 ‘눈물은 강물에’, 그윈플렌이 상원 귀족들에게 눈을 뜨고 가난한 사람들을 보라고 외치는 ‘그 눈을 떠’와 ‘웃는 남자‘ 등은 빼어난 선율로 객석을 사로잡았다.
국내 공연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디자이너 오필영의 무대 역시 초연 때 명성 그대로 작품을 빛냈다. ‘눈물은 강물에’가 펼쳐지는 템즈 강가와 그윈플렌이 자신의 기이한 운명에서 깨달은 진실을 외치나 좌절하고 마는 영국 상원,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극 초반 선박 난파 대목과 함께 ‘웃는 남자’에서 오랫동안 기억할 장면을 만들어냈다.
좋은 노래, 훌륭한 무대를 지닌 ‘웃는 남자’를 완성하는 건 배우들의 열연이다. 지난 17일 공연에선 엑소 수호가 주인공 그웬플린 역을 맡아 제 몫을 했다. 과장되지 않은 연기와 노래로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깨닫고 사회 변혁에 도전하다 좌절하는 청년의 비운은 객석 공감을 끌어냈다.
그웬플린보다 한층 입체적인 캐릭터는 여왕의 이복동생 ‘조시아나 여공작’이다. 꽉 막힌 귀족 사회 위선을 냉소하며 기괴한 외모의 유랑극단 배우 그웬플린에게 호감을 느끼나 그의 진짜 신분을 안 후 되돌아서는 신분 계급제 사회의 또 다른 이단아다. 이날 공연에선 다양한 뮤지컬에서 가창력을 뽐내온 김소향이 뮤지컬계 ‘디바’로서 매력을 충분히 보여줬다. 또 그윈플렌을 거둬들이는 떠돌이 약장수이자 유랑극단장 우르수스로는 양준모가 다른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카리스마가 뿜어지는 연기와 노래로 객석 갈채를 받았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3월 1일까지.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