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빛이 거의 없는 그곳, ‘남북갈등 산물’이기도”…외신도 조명한 ‘반지하’

英 BBC, 반지하 주민 찾아가 인터뷰…日 아사히신문도 소개

“시계를 보지 않으면, 내가 낮에 깨어있는 것인지 밤에 깨어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서울의 한 반지하 원룸에 사는 30대 남성 이모씨는 자신이 세 들어 사는 방을 ‘낮과 밤’이 구분되지 않는 공간이라고 표현하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햇빛이 거의 들지 않아 항상 어둡고 습기가 항상 차 있어서 곰팡이도 자주 핀다고 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작품상 등 4관왕에 오르면서 외신의 시선이 극 중 배경이 된 ‘반지하’라는 공간에 쏠리고 있다. 영국 BBC는 한국의 반지하를 소재로 실제 거주민을 찾아가 인터뷰하는 르포 형식의 기사도 10일(현지시간) 냈다.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네이버 제공

 

BBC는 기사에서 “빛이 거의 없어 다육식물도 살기 힘들고 사람들은 창문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다”며 “10대들은 그 앞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땅에 침을 뱉는다”고 전했다. 이어 “여름에는 참기 힘든 습기와 빨리 퍼지는 곰팡이와 싸운다”고 30대 남성 오기철씨가 사는 반지하 방을 묘사했다.

 

BBC는 반지하가 단지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건축적인 특성이 아닌 ‘남북갈등의 역사 산물’이라고도 설명했다.

 

1968년 북한의 청와대 습격 사건 등을 계기로 고조된 남북 간 긴장 속에서 한국 정부가 1970년 건축법을 개정해 국가 비상사태 시 모든 신축 저층 아파트 지하를 벙커로 사용할 것을 의무화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반지하 공간을 사람이 사는 곳으로 임대하는 것은 불법이었지만, 1980년대 주택 위기가 찾아오면서 정부는 이 공간을 거주 시설로 합법화했다고 덧붙였다.

 

건축법은 1970년 개정 당시 지하층을 “건축물 바닥이 지표 이하에 있는 것으로, 바닥에서 지표까지 높이가 그 층 천정 높이의 3분의 1이상이다”라고 규정했다. 이 내용은 1984년 같은 법이 개정되면서 “건축물 바닥이 지표면 이하에 있는 층으로, 바닥에서 지표면까지 높이가 그 층 천정까지 높이의 3분의 2이상이 되는 것을 말하되, 다세대주택과 단독주택은 2분의 1이상이 되면 지하층으로 본다”로 바뀌었다.

 

BBC는 아울러 반지하가 수천명의 젊은 한국인들이 더 나은 미래를 그리며 열심히 살아가는 공간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일부가 자신을 가난하게 보는 사회적 오명을 극복하고자 고군분투하지만,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인터뷰에서 오씨는 한국에서는 멋진 차나 집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여겨진다며, 반지하는 가난의 의미가 짙다고 말했다. 그는 반지하에서의 삶이 ‘내 집 마련’의 꿈이 실현되는 날을 앞당기길 바란다면서 “(반지하에 사는) 내 유일한 후회는 고양이 에이프릴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을 즐길 수 없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일본 아사히 신문도 10일 서울의 한 반지하 방에 사는 80대 노인의 사연을 소개하며, 도심 내 주택 부족 심화로 저소득층이 지하층 방에 살기 시작했지만 최근에는 시선이 많이 바뀌면서 젊은이들이 몰리는 이태원 등지에서 건물 반지하의 특성을 살린 카페나 잡화점이 인기를 끈다고 전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