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사(畜舍)는 무엇일까? 지나가는 소도 웃을 질문일 게다. 가축을 기르는 건물이니 말이다. 축산농민에게 축사는 가정을 꾸리고 자녀의 학업과 출가를 뒷받침해줄 꿈을 일구는 공간이기도 하다. 환경부는 어떻게 정의할까. 가축분뇨를 배출하는 시설이다. 한마디로 환경오염 지도·점검·단속 대상이다. 환경부의 입장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런 간극은 축산업에 강력한 규제로 발현한다.
가축질병이 발생하면 친환경 축산이 대두하고 각종 제한이나 통제, 규정 등이 생기곤 한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는 야생 철새가,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은 야생 멧돼지가 매개체로 알려졌지만, 축산농가들도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예컨대 넓고 쾌적한 공간에서 가축을 키우면 면역력 향상 등으로 질병 발생이 줄 터이니 말이다. 갑작스러운 규제는 논란을 야기하거나 사육비용 증가에 따른 농가 부담으로 귀결한다. 가축질병 소식을 접한 소비자들은 과도한 불안을 보이며 축산물을 외면한다. 자식처럼 키운 소, 돼지, 닭이 살처분되고 가격마저 폭락하면 축산농가들의 마음은 가리가리 찢어진다. 탄력적인 규제 운용이 요구되는 이유다.
올해 축산농가의 화두인 ‘퇴비 부숙도’도 같은 맥락에 있다. 퇴비 부숙도는 가축분뇨를 잘 ‘썩히고 익혀’(腐熟) 논밭에 뿌리는 게 핵심이다. 악취나 수질오염을 막고 농경지를 건강하게 만들자는 취지다. 한우·젖소, 양돈, 가금 농가들은 축사면적에 따른 부숙 기준을 준수하고, 연간 1∼2회 부숙도 검사를 해야 한다. 위반하면 최대 200만원의 과태료가 물린다. 이 제도의 시행시기는 3월25일로 코앞이다. 한국낙농육우협회 낙농정책연구소가 지난달 초 발표한 퇴비 부숙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 낙농가 390호 중 약 20%는 제도 자체를, 약 60%는 검사 횟수나 검사 시료 채취방법 등을 몰랐다. 축산 분뇨 처리시스템을 뜯어고치면서도 홍보를 제대로 안 한 거다. 축산농가들이 준비가 안 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퇴·액비 부숙도는 환경부가 2013년 가축분뇨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마련하면서 추진됐다. 당시 퇴비 부숙도 검사 방법과 기준 마련 등을 놓고 다툼이 일었고 축산단체들은 강하게 반대했다. 환경부는 법 개정을 밀어붙여 2014년 3월 가축분뇨법을 개정해 2015년 3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어 2017년 1월 관련 시행령을 개정해 효력을 발생시켰다. 그런데 정부는 부숙도 기준 등에 관한 고시를 2018년 7월에서야 마련했다. 퇴비 부숙도 홍보는 작년 하반기부터 주로 이뤄졌다. 제도 미숙지를 축산농가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억지다.
퇴비 부숙도 기준을 충족하려면 축분 색깔(갈색 또는 흑색), 냄새(소멸), 수분(50% 전후), 퇴비화 기간(6개월 이상), 퇴비 뒤집기(7회 이상), 통기(바람 통하기), 최고온도(60도 이상), 유효 미생물인 방선균(많음) 등 8개 항목을 관리해야 한다. 큰 비용이 드는 퇴비사의 신축이나 증·개축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조례로 퇴비사의 증·개축을 제한한다.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정부는 부랴부랴 지난달 신·증축이 가능하도록 시·도에 공문을 보냈다. 만시지탄의 느낌이다. 엄청난 양의 톱밥, 교반기(휘저어 섞는 장비)와 같은 장비를 사야 한다. 초식동물인 소의 분뇨는 작물 생산성을 높이는 자원으로 여겨지는데, 과학적인 분석 없이 일률적으로 부숙도 검사를 의무화한 것도 축산농가의 거부감을 사는 대목이다.
정부는 퇴비 부숙도 시행에 앞서 충분한 유예기간을 두는 것은 물론이고 관련 교육과 장비 지원 등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이대로 시행하면 과태료 처분을 받는 농가가 속출할 것이다. 이를 피하려고 축분을 음성적으로 버리는 등 꼼수가 자행될 개연성이 있다. 보완 없는 제도 시행은 축산 포기나 사육기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앞서 정부가 무허가 축사 적법화 과정에서 유예기간을 둬 연착륙하도록 도운 것은 본보기다. 축산농가들도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 지속가능한 축산은 환경과 얼마나 잘 공존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을 곱씹길 바란다.
박찬준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