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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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프리즘] 존재의 이유

물질은 도대체 왜 존재하는가 / 물질·반물질 정확히 대칭 아냐 / 중성미자 관찰 ‘T2K 논문’ 주목 / 우리 존재 물리학적 근거 기대

우리는 도대체 왜 존재하는 걸까? 우리 모두가 묻는 성찰적 질문이기도 하지만, 물리학도 같은 질문을 한다. 물론, 질문의 결은 좀 다르다.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이 모든 물질이 존재하게 된 걸까?

댄 브라운의 소설 ‘천사와 악마’에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에서 비밀결사조직이 탈취한 반물질 폭탄이 등장한다. 소설에나 나오는 얘기지, 아무도 살면서 반물질로 만들어진 커다란 무언가를 본 사람은 없다. 아니, 보았어도 보았다고 얘기해 줄 생존자는 없다. 접촉하는 순간 우리 몸을 이루는 보통의 물질과 만나 소멸하기 때문이다. 1kg의 반물질이 물질과 만나 쌍소멸하면서 내어놓는 에너지는 인간이 만든 가장 치명적인 핵폭탄의 위력 정도가 된다.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 물리학

반물질은 물질과 만나 에너지로 변하니, 그 반대도 물론 가능하다. 아주 짧은 순간 아무것도 없는 진공에서 물질 입자와 반물질 입자가 쌍으로 생성되고, 곧이어 다시 쌍으로 만나 소멸해 진공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지금도 우리 곁에서 팥죽 끓듯 일어나고 있다. 우주의 처음도 비슷하다. 바로 이런 양자요동 효과로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짧은 순간 생성된 엄청난 에너지가 빅뱅을 일으켰다고 생각하는 물리학자가 많다. 이 엄청난 에너지가 물질과 반물질로 변하면서 우리 우주가 태어났다. 빅뱅 후에는 다시 물질과 반물질이 만나 쌍소멸하며 에너지로 바뀐다. 물질과 반물질이 정확히 같은 양이 만들어졌고, 이들이 쌍으로 만나 모두 소멸한, 완벽히 대칭적인 세상에는, 이 과정을 이기고 살아남은 물질도, 반물질도 없다. 완벽한 우주라면, 이 글을 쓰는 필자도, 독자도 없다. 지구도, 태양도 없다. 빅뱅으로 시작한 우주에는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도대체 왜 존재하게 된 걸까?

우리 존재의 이유는 당연히 물질과 반물질이 정확히 대칭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생성된 물질과 반물질은 정확히 같은 양이었던 것으로 믿어진다. 그렇다면, 이후의 과정에서 물질과 반물질이 다른 방식으로 행동해야 반물질에 대한 물질의 우위가 가능하다.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실제로 벌어졌어야 하는 일이다. 지난달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중성미자라는 입자와 그 반입자인 반중성미자가 다르게 행동한다는 상당한 신빙성이 있는 측정 결과를 담은 논문이 발표되었다. 일본의 도카이(Tokai)에서 생성된 중성미자와 반중성미자를 약 300km로 떨어진 가미오카(Kamioka)에서 측정한다는 의미를 담아 T2K라 부르는 국제공동연구팀의 논문이다.

우주에 빛알(광자) 다음으로 많이 존재하는 중성미자는 미묘한 입자다. 지금도 우리 몸을 통해 1초에 수조개가 지나치고 있지만, 다른 입자와 상호작용하지 않아 어느 누구도 그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한다. 벽을 스르륵 통과하는 유령 같은 입자다. 중성미자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순수한 물을 쓴다. 아주 작은 확률로 물과 상호작용해 빛을 내는데, 이 빛을 측정해 중성미자를 찾아내는 방식이다.

모두 전자, 뮤온, 그리고 타우 입자와 관계된 세 종류의 중성미자가 있고, 이들은 출발지에서 목적지로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종류로 변하게 된다. 도카이에서 뮤온 중성미자와 그 반입자인 뮤온 반중성미자로 출발해서, 가미오카에서 각각 전자 중성미자와 전자 반중성미자로 변하는 과정을 관찰했다. 우리 우주에서 중성미자와 반중성미자가 정확히 똑같게 행동하는 경우 물리학이 예상하는 개수보다 더 많은 전자 중성미자가 가미오카에서 측정되었다. 검출이 워낙 어려워 2009년부터 2018년까지의 긴 시간 동안 관찰된 개수는 모두 100여개에 불과했지만, 통계적인 우연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유의미한 차이였다. 중성미자와 반중성미자가 다르게 행동한다는 이번 결과는 반물질에 대한 물질의 우위를 설명할 수 있는 한 퍼즐 조각이 된다. 더 많은 중성미자를 검출해 결과를 확실히 하기 위한 후속 국제공동연구가 진행될 계획이다. 중성미자의 질량은 전자의 50만분의 1보다도 더 작다. 이 광막한 우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든 존재의 물리학적 근거가 가장 미약한 입자에 대한 실험에 달렸다.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 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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