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靑·정부 당혹감… ‘北 의도적 긴장 조성’ 동기 분석에 총력 [남북채널 끊어버린 北]

공식반응 자제 신중모드 / 국방부 “상황 지켜보겠다” 신중 / 외교부선 “美측과 긴밀히 소통” / 일각 “北 대화판 키우기” 분석 / 정부 조만간 메시지 내놓을 듯

청와대와 정부는 북한의 남북 통신연락 채널 차단·폐기에 대해 당혹해하면서도 공식 반응을 자제한 채 북한의 의도를 분석하는 데 주력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대화단절 선언이 남북대화의 계기를 만들기 위해 갈등 상황을 키우는 것일 수 있다는 기대도 내비쳤다.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청와대 관계자는 “정부의 입장은 통일부가 밝혔다”며 공식 입장을 삼갔다. 통일부가 “남북 간 통신선은 소통을 위한 기본 수단이므로 남북 간 합의에 따라 유지돼야 한다”고 밝힌 원론적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남북 정상 간 핫라인 사용 횟수, 핫라인의 실제 단절 여부 등을 묻는 질문에도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다른 부처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국방부는 북한의 군 통신선 차단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이날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는 북한의 군 통신선 차단 배경과 국방부의 입장을 묻는 질문이 쏟아졌지만, 최현수 대변인은 “상황을 지켜보겠다”며 말을 아꼈다. 외교부 역시 ‘미국 측과 상시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이 같은 신중 모드는 북한의 의도가 모호한 상황에서 섣부른 대응은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에 설치된 남북 정상 간 '핫라인'(직통전화) 전화기. 연합뉴스

청와대는 국가안보실을 중심으로 북한의 행동에 대한 동기 분석과 대응책 등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는 소집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공동 방역 등 남북 협력사업 추진을 제안, 이를 통한 남북 대화와 북·미 대화 계기 마련을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북한은 문 대통령의 제안에 응답하지 않은 채 “남측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라”며 우회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다가 최근 대북전단 살포를 두고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했다.

국방·통일부 장관 마스크 대화 정경두 국방부 장관(왼쪽)과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마스크를 쓴 채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이와 관련, 영국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지난 5일(현지시간) 발간한 ‘2020 아시아태평양 역내 안보평가’ 보고서에서 한국이 한반도 문제의 중재자 역할을 사실상 중국에 빼앗기면서 당분간 교착 상태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구소는 보고서에서 “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화는 진전이 없었고, 두 정상이 2018년 논의했던 각종 협력 정책들 역시 답보했다”면서 “북·미 정상 간 직접 소통로가 구축되면서 남북대화의 가치가 급격히 낮아졌고, 이후 비핵화 협상을 둘러싸고 북·미 관계가 소원해지자 북한이 중국과 더욱 밀착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북한이 더 큰 규모의 대화를 바라고 있다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북한은 과거에도 남북, 북·미 대화가 교착상황에 빠졌을 때 긴장과 갈등 수위를 한껏 높인 뒤 일거에 해소하는 방식을 종종 활용해왔다는 것이다. 이번에 북한이 문제 삼은 대북전단 살포도 ‘적대행위 중지를 명기한 9·19 군사합의를 제대로 이행하라’는 메시지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는 오는 15일이 6·15 남북 공동선언 20주년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남북 대화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내면 북한이 이에 호응할 것인지도 관심사다.

 

박현준 기자 hjunpar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