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과 동료 선수들의 가혹 행위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고 최숙현(1998-2020)에게는 ‘팀 닥터’도 공포스러운 대상이었다.
선수를 부상에서 보호하고 치유하며 안전을 담당해야 하는 ‘수호자’가 팀 닥터이지만, 최 선수에게는 폭언과 폭력을 행했고 ‘금전 문제’에 연루됐다는 의혹도 나왔다.
연합뉴스는 녹취록, 징계신청서, 변호인 의견서 등을 일부 공개하며 “최 선수가 생전 감독, 선배 2명 외에 팀 닥터에게도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내용이 있다”고 밝혔다.
녹취록에서 감독과 팀 닥터 안모씨가 최 선수 등을 폭행하며 술을 마시는 듯한 정황이 확인됐다. “너는 아무 잘못이 없어”라고 말한 후 “이 꽉 깨물어”라는 말과 함께 ‘찰싹’ 소리가 들리지만, 감독은 “일단 한 잔 드시죠”라고 할뿐 아무 제지를 하지 않는다.
안씨는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이 임시 고용했다. 팀 닥터 역할을 맡았지만 의사는 아니었고, 물리치료를 담당했다. 대한물리치료사협회는 안씨가 물리치료사 면허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세계일보에 알렸다.
제대로 된 자격증도 없는 안씨가 감독조차 제지 못할 정도로 위상이 높다는 사실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팀 관계자들은 그가 군인올림픽 출전 트라이애슬론팀 닥터를 맡는 등 영남 일대에서 영향력이 강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녹취록에서 경주시청 감독은 안씨를 “선생님”이라고 예의있게 부른다. 한 트라이애슬론 선수는 “경주시청 팀에서는 팀 닥터가 감독보다 나이도 많고 영향력도 많았다”고 증언했다.
‘금전적 문제’가 얽힌 정황도 최 선수가 남긴 기록에 보인다. 최 선수는 “팀 닥터가 2015년과 2016년 뉴질랜드 합숙 훈련에 갈 때 정확한 용도도 밝히지 않고 돈을 요구했다”며 “2019년에 약 개월 동안 뉴질랜드 전지훈련을 할 때는 심리치료비 등 명목으로 130만원을 요구해 받아가기도 했다”고 밝혔다.
최 선수는 “팀 닥터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고 정확한 용도도 물을 수 없었다”며 “요청하는 금액만큼 줄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여, 팀 닥터의 영향력을 짐작케 했다.
최 선수의 그의 가족 명의 통장에서 안씨에게 이체한 금액은 총 1500만여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스포츠계에서 더 이상 폭력 사태와 인권 침해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며 철저한 진상 조사를 지시한 가운데, 최윤희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은 대한체육회를 방문해 사건 경위를 보고받았다.
최 차관은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야당인 미래통합당도 “최숙현 사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관계 기관에 대한 진상조사를 실시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최숙현법’ 제정에 나설 것”이라 밝혔다.
김명일 온라인 뉴스 기자 terr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