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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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저는 ‘코로나19’입니다

한국인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변형되어 태어난 새로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이름은 ‘코로나19’입니다. 저는 매우 작아 여러분이 직접 보실 수는 없지만, 저로 인해 열이 나고, 피곤함, 심한 고통을 겪을 수 있어 제 존재를 알려드립니다. 호흡곤란과 폐렴으로 여러분을 입원하게 만들고 돌이킬 수 없는 위중한 상태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저의 삶의 목표는 다른 생물체처럼 많은 후손을 퍼뜨리는 것입니다. 미안하게도 번식을 혼자 할 수는 없어서 기생충처럼 사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번에 제 목표를 잘 수행할 수 있게 변형되었고, 전 세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많은 후손을 번식하는 데 크게 성공하였습니다.

저로 인해 미국에서는 수개월 만에 13만명 이상이 사망하였습니다. 6·25전쟁 3년 동안 전사한 미군 3만6000명의 3배가 넘는 숫자죠. 유럽에서도 20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았습니다. 이 나라들이 처음부터 우왕좌왕한 덕에 저는 기하급수적으로 자손을 늘려 그곳의 의료체계까지 붕괴시킬 수 있었어요. 하지만 한국이라는 특이한 나라에서는 성공하진 못했습니다. 초기에는 좋은 시절도 있었지만요.

한창훈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교수·호흡기 내과

이 나라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소리와 냄새도 없는 저를, 미리 광범위하고 철저한 역학조사로 찾아내서 격리시키고 감시를 하더군요. 게다가 저를 찾아내는 검사는 새로운 방식으로 왜 이리 대규모로 신속하게 진행되는지. 또 국민건강보험으로 검사비까지 지원할지는 미처 예상치 못했어요. 겨우 사람 몸속에 들어가면 시설이 잘 된 격리병실에 다른 사람을 넘볼 수 없게 완전차단을 하고, 의료진이 정성을 다해 제가 기생하고 있는 사람을 돌보는 일을 할지도 말입니다.

더 힘든 것은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친척들의 원망이에요. 사람들이 알아서 서로 사회적 거리를 두고, 철저한 마스크 사용과 손을 열심히 닦는 개인위생까지 너무 잘하는 바람에 감기 바이러스와 독감 바이러스는 물론 다른 감염성 호흡기질환까지 줄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현재 잘 지키고 있는 생활방역수칙이 코로나 이후 기본문화로 정착된다면 저와 친척들은 맥을 출 수가 없을 거예요.

그러나 저는 알고 있지요. 현대의학이 아무리 발전했어도 치료제나 백신 개발은 어렵고, 안전성 검증, 생산, 실제 다수가 접종받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저는 그동안 산발적으로라도 집단감염을 계속 일으켰고, 2차 유행을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지요. 제 자랑이긴 하지만 변화와 대응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당장 치료제와 백신이 해결책은 될 수 없을 겁니다. 모두가 치료제와 백신이 빨리 개발되기를 간절히 바라겠지만요.

나쁜 짓만 한 것은 아닙니다. 저로 인해 한국 사람들은 불필요한 병원 이용은 줄여야 하고 취약한 입원환자의 안정과 안전을 위해 병원방문을 자제하는 간병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으니까요. 덧붙이자면, 저를 극복하기 위해 지금 당장은 치료제가 아니라 일상에서 건강행동 수칙을 생활화하는 문화정착이 중요하다는 것을 정중히 알려드립니다. 거리두기의 장기 지속으로 인한 피로감과 마스크가 답답해지는 더운 날씨로 사람들이 힘든 지금이 저에게는 기회인 만큼, 제 얘기를 흘려듣는다면 더 무서운 제2차 재앙을 맞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한창훈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교수·호흡기 내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