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세상한제 등을 담은 새로운 임대차법 시행 이후 전세 시장이 급격히 불안해진 데 대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9일 사과했다. 하지만 이 법을 고쳐 시행한 국토교통부의 김현미 장관은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현 정부 들어 23번에 걸쳐 쏟아낸 부동산 대책에도 시장 혼란을 단속하지 못한 국토부 입지가 그만큼 좁아졌고, 그 공백을 점차 기획재정부가 채워간다는 분석이다.
홍 부총리는 이날 열린 제3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 모두발언에서 “(새 임대차법 시행으로) 전국 845만 임차가구의 많은 분은 계약갱신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나 이러한 과정에서 가구분화, 결혼, 자녀교육 등으로 새로운 집을 구하시는 분들에게는 최근 전세가격 상승이 부담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홍 부총리는 “전세시장은 금년 6월 이후 상승폭이 확대되는 등 불안요인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이는 (새 임대차) 법 시행 전 미리 전세가격을 올려 계약을 체결하면서 가격 상승폭이 확대되고 계약갱신 예정에 따라 전세물량이 중개시장에서 줄어드는 데 주로 기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주택 정책이 주 업무인 김 장관의 언급은 전해지지 않았다. 이날 회의에는 홍 부총리와 김 장관, 은성수 금융위원장,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참석했다.
이렇게 김 장관이 전면에 나서지 않는 것은 최근 정치권과 시민사회 등에서 제기된 정책 실패 책임 논란 때문으로 보인다. 앞서 수도권 대부분을 규제지역으로 묶은 6·17 대책 합동브리핑 때만 해도 김 장관이 주도적으로 내용을 발표했고, 기재부에선 1차관이 배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일 김 장관을 청와대로 호출해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을 때도 김 장관의 입지는 탄탄해 보였다.
하지만 이후로 연달아 발표된 7·10, 8·4대책에도 시장불안은 계속됐고, 극에 달한 민심이반은 문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지지율 추락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김 장관은 이후 방송 인터뷰에만 간헐적으로 응할 뿐 적극적인 정책 행보를 피하는 분위기다. 야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 등에서 계속되는 경질 요구도 김 장관의 보폭을 줄인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정부 초대 내각 멤버인 김 장관은 내달 하순이면 역대 최장수 국토부 장관 재임 기록을 깬다.
나기천 기자 n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