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장석주의인문정원] 뱀은 죄가 없다

뱀은 모든 문화권서 혐오 표적
낙인찍기는 없어져야 할 악습

시골에 살 때 내 무딘 감각을 화들짝 깨어나게 한 것은 야생동물과의 우연한 마주침이다. 나는 저수지를 앞에 둔 산자락 아래 살았는데, 고라니·담비·너구리·두더지·뱀, 그리고 붉은머리오목눈이·곤줄박이·꿩·멧비둘기·물까마귀·박새·파랑새·뻐꾸기 같은 새들이 무시로 나타났다. 겨울밤 허공으로 퍼져나가는 고라니의 날카로운 울음소리는 음산했다. 그런 밤에 쉬이 잠들지 못하고 죽고 사는 일에 대한 번민으로 몸을 뒤척였다. 너구리는 하천을 통해 집 마당까지 올라왔다가 부엌 안쪽을 기웃거리다가 돌아갔다. 풀로 뒤덮인 마당은 울룩불룩했는데 그건 땅 밑에 서식하는 두더지가 파는 땅굴 때문이다. 집 주변에 야생동물 출몰이 잦은 건 그만큼 생태 환경이 좋다는 징표였다.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건 뱀이다. 뱀은 마당과 수돗가에 나타나고, 서재 앞 데크에서 긴 몸을 뉜 채 볕을 쬐며 축축해진 몸을 말렸다. 시력이 약한 대신 청력이 예민한 뱀은 데크에서 쉬다가 내 기척을 듣고 몸을 날리며 날렵하게 사라졌다. 어느 해인가는 보일러실 문을 열었다가 기겁을 했다. 똬리를 튼 뱀과 마주친 것이다. 뜻밖의 손님 내방에 놀랐지만 나는 호들갑을 떨지 않고 보일러실 문을 닫은 채 물러났다. 며칠 뒤 보일러실을 들여다봤는데, 뱀은 사라지고 허물만 남아 있었다. 시골에 살 때 뱀은 단 한 번도 나를 해치려고 한 적이 없다. 우리 사이는 우호적이었는데, 그건 서로 적대할 이유가 없었던 탓이다.

장석주 시인

온몸이 비늘로 덮이고 길쭉한 이 파충류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뱀은 모든 문화권에서 혐오동물로 꼽히는데, 뱀이 혐오의 표적인 된 건 악마의 사주를 받아 인간에게 죄와 타락을 전해준 매개 동물이라는 낙인 때문이다. 뱀에게 씌워진 유혹·사기 협잡·기만의 존재라는 낙인찍기의 유래는 뱀이 거짓말을 일삼는 입을 가진 사악한 유혹자로 인류를 죄와 죽음에 빠뜨렸다는 기독교가 퍼뜨린 신화에서 찾을 수 있다.

뱀에게 씌운 오명과 불명예라는 낙인을 지운 철학자는 바로 니체다. 니체는 제 분신인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뱀을 “태양 아래 가장 현명한 동물”이라고 칭송한다. 어느 무더운 날 차라투스트라는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잠이 들었는데 그때 뱀이 다가와서 목을 물었다. 차라투스트라는 비명을 지르며 깨어난 뒤 뱀이 제 목을 물었다는 걸 알았다. 뱀이 겁먹고 도망치려 하자, 차라투스트라는 말한다. “잠깐, 기다려라. 나 아직 네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못했구나! 갈 길이 먼 나를 네가 때맞춰 깨워주었구나!” 뱀이 말한다. “그대의 날은 얼마 남지 못했다. 내 독은 치명적이다.” 차라투스트라는 대답한다. “뱀에 물려 죽은 용이 일찍이 있었던가? 독을 다시 거두어들여라! 너 그것을 내게까지 줄 만큼 넉넉하지 못한 터에.” 뱀은 차라투스트라의 목에 달려들어 상처를 핥아낸 뒤 사라졌다. 또 다른 대목에서 뱀에게 목구멍을 물려 사지를 떨며 절명 직전에 있던 양치기는 “대가리를 물어뜯어라! 물어뜯어라!”라는 차라투스트라의 외침을 듣고 그대로 실행하며 뱀에게서 풀려났다.(스물세 살 청년 서정주는 이 대목에서 ‘화사’(花蛇)라는 시의 착상을 얻었다!) 그 뒤 양치기는 보통 사람이 아닌 변화한 자, 빛으로 감싸인 자, 웃음을 되찾은 자로 바뀐다.

구불구불한 영혼을 가진 존재, 긴 몸뚱이로 지상을 기어 다니는 뱀은 자연 생태계에서 유해 동물이 아니다. 풀밭의 조용한 사냥꾼이 인류 종족의 혐오동물로 둔갑한 것은 낙인찍기의 결과다. 뱀은 아무 죄도 없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사이에 온갖 ‘주홍글씨’를 새기는 낙인찍기가 횡행한다. ‘빨갱이’라는 낙인, ‘꼴통보수’라는 낙인, ‘일베충’이라는 낙인, ‘꼰대’라는 낙인, ‘한남’이라는 낙인, ‘맘충’이라는 낙인…. 낙인찍기는 멀쩡한 사람을 표적 삼아 차별과 따돌림을 조장하고 끝내는 희생양으로 만든다. 한 개인의 삶과 인격을 파괴하는 이런 범죄행위를 용인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편협한 진영 논리에 갇힌 낙인찍기는 성숙한 사회에서는 없어져야 할 악덕이고 악습이다.

 

장석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