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국민의힘에서 물의를 일으킨 의원들의 탈당 및 제명이 잇따랐다. 그런데 비례대표 의원의 경우는 제명을 당해도 의원직을 고스란히 유지하는 등 별다른 불이익이 없다는 점에서 비례대표 의원 제명을 두고 ‘무늬만 징계’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실제로 무소속으로 활동 중인 비례대표 의원이 예전 소속 정당 동료 의원들의 지원에 힘입어 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것으로 나타나 “제명이 징계 조치로서 아무런 효과도 없는 것 아니냐” 하는 지적이 일고 있다.
13일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무소속 김홍걸 의원(비례대표)은 최근 소방기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소방관이 화재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타인에게 재산상 피해를 입혀 소송에 휘말렸을 때 그 소송 비용을 국가가 지원하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현행법상 법률안 발의에는 의원 10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김 의원이 대표 발의자로 이름을 올린 소방기본법 개정안은 그의 옛 소속 정당인 민주당의 김민철 오영환 이규민 이상헌 이용빈 이정문 임호선 최종윤 허종식 9명의 의원이 동참해준 덕분에 발의에 필요한 정족수 10명을 채울 수 있었다.
김홍걸 의원은 부동산 투기 의혹에 휘말려 야당과 시민단체 등의 거센 비난에 직면했다. 결국 이낙연 대표 체제의 민주당은 그에게 제명이란 ‘최고 수준의 징계’를 내렸다. 이 대표는 “고뇌에 찬 결단이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김홍걸 의원은 민주당에서 무소속으로 바뀌었을 뿐 의원직 신분을 그대로 유지한 채 왕성한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 소방기본법 개정안 발의에서 보듯 예전 동료인 민주당 의원들의 ‘지원사격’까지 받아가면서 말이다.
비슷한 처지의 무소속 양정숙 의원(비례대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민주당과 합당하기 전의 더불어시민당 소속 비례대표 의원으로 21대 국회에 입성한 양 의원은 재산 증식 과정의 불투명성 등 각종 의혹이 불거져 시민당에서 제명을 당했다.
양 의원은 지난달 24일 하루에만 무려 8개의 법률안을 대표 발의하는 등 왕성한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대표로 발의한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개정안,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의 내용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민주당 의원들의 동참으로 발의에 필요한 정족수 10명을 채웠음을 알 수 있다. 뒤집어 말하면 ‘옛 동지’에 해당하는 민주당 의원 일부가 양 의원의 의정활동을 물심양면으로 열심히 돕고 있다는 얘기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겉으로는 제명 카드로 엄청 강도높은 징계를 가한 것처럼 굴면서 뒤에서는 법률안 대표 발의 때마다 깨알 같은 도움을 주고 있다”며 “이러니 비례대표 의원들에 대한 제명 처분이 과연 징계로서 진정성이 있는지 의문이라는 회의적 반응이 나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