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별세 소식이 25일 전해지자 주요 외신들도 긴급 뉴스로 타전하며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키운 고인의 경영철학을 집중 조명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장문의 부고 기사를 통해 삼성전자를 스마트폰·텔레비전·컴퓨터칩 거인으로 키운 ‘혁신가’로서의 모습과 함께 두 차례 기소됐다가 사면된 어두운 이면을 두루 짚었다.
신문은 고인이 1987년 선친으로부터 그룹을 물려받았을 때 삼성전자는 “싸구려 TV나 못 미더운 전자레인지를 할인매장에서 파는 기업이라는 인식이 서방에 있었지만, 회사를 끊임없이 기술 사다리 위로 밀어올리면서 1990년대 초반 이후 전 세계 메모리, 평면 패널 디스플레이, 모바일 시장을 차례로 장악해 나갔다”며 이 회장을 “원대한 전략적 방향을 제시한 큰 사상가(big thinker)”라고 평했다.
특히 1993년 경영진에게 낡은 업무·사고방식을 버리라며 “처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고 일갈하고, 1995년 휴대전화 결함이 발견된 후 구미공장에 쌓아둔 5000만달러어치 불량품을 불태우며 ‘품질’을 강조했던 일화도 소개했다.
아울러 NYT는 고인이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전력이 있다면서 “재벌이라고 불리는 한국의 가족 소유 거대기업이 영향력을 유지하려고 때때로 하는 미심쩍은(dubious) 방식을 고인도 재임기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AP통신은 “이 회장의 리더십하에서 삼성은 세계 최대 스마트폰·메모리칩 생산자로 도약해 전체 매출이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5분에 1에 이른다”고 했다. AFP통신은 “삼성전자를 글로벌 테크 거인으로 변모시킨 이 회장은 2014년 심장마비로 병석에 눕게 됐다”며 “은둔형 생활방식으로 유명한 고인의 구체적 상태에 관해서는 공개된 바가 적고, 그의 마지막 날들 역시 미스터리에 싸여 있었다”고 전했다.
일본 매체는 삼성이 일본 기업을 추월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고인이 주역이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사망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삼성전자는 일본 대기업이 자랑했던 반도체, 디스플레이 사업 확대에 주력했다”며 “현재는 부품에서 완제품까지 취급하면서 스마트폰, TV, 반도체 메모리 등 각 분야에서 세계 최고로 군림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사히신문은 “(고인은) 과감한 투자로 반도체, 휴대전화 등의 분야에서 세계 톱 기업으로 키웠고, 삼성그룹 전체의 수출규모는 한국 수출 총액의 30%를 점하고 있다”고 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이 회장이 한때 일본에서 살았고 와세다대를 졸업했다면서 일본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중국 언론도 이 회장 별세 소식을 긴급 보도했으며,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微博)에서도 주요 화제에 올랐다.
유태영 기자, 도쿄=김청중 특파원 anarchy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