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에 실패한 대표적인 국가로 꼽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피해가 상당히 차별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지난해 말 발표한 자료를 보면 미국 내 백인을 기준으로 흑인, 히스패닉,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코로나19 확진율은 1.4~1.8배, 입원율은 4배 안팎으로 높다. 사망률 역시 2.8배에 달해 코로나바이러스의 피해는 유색인종들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건 아시아계는 확진율이 백인들보다 오히려 낮은 0.6배이고, 입원율과 사망률은 각각 1.2배, 1.1배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서 살다가 이민 온 아시아계의 마스크 쓰기를 비롯한 위생관념으로 확진율이 낮은 건 짐작 가능한 일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원, 사망률이 백인들보다 높게 나온 것은 결국 경제력과 조기치료 접근성 등의 차이 때문인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결국 미국에서는 ‘블랙&브라운’이라 불리는 흑인과 히스패닉계가 코로나19의 피해를 가장 크게 받고 있다. 도심 빈민가를 비롯해 인구가 밀집된 지역에 사는 경우가 많고, 재택근무를 할 수 없는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많은 것 등의 요인들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코로나19 백신이 나온 지금 가장 먼저 백신을 맞으려고 해야 할 사람들은 흑인과 히스패닉계이어야 할 거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 12월에 발표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백신을 꼭 접종하겠다고 대답한 사람들은 아시아계 83%, 히스패닉계 63%, 백인 61%인 데 반해 흑인들은 41%에 불과했다. (참고로, 한국인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는 87%가 맞겠다고 답을 해서 미국 내 아시아계의 반응과 큰 차이가 없었다).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 문화에서는 정부와 의학, 과학에 대한 신뢰가 타 문화에 비해 높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미국 내 흑인들은 왜 평균보다 훨씬 낮은 신뢰도를 보였을까?
지난 한 해 미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BLM(Black Lives Matter,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을 통해 다시 한 번 알려졌지만, 미국사회의 흑인들은 남북전쟁 중에 노예에서 해방된 후에도 지금까지 크고 작은 차별을 끊임없이 겪고 있다. 그중에는 경찰의 폭력행위와 같이 눈에 쉽게 띄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생활 속에서 오로지 직접 당하는 사람만 느낄 수 있는 미세한 차별들도 있다.
흑인들은 병원에서, 특히 의료진이 백인인 경우 그런 경험을 많이 한다고 한다. 대표적인 것이 “흑인들은 피부가 두껍고, 통증을 덜 느낀다”는 잘못된 생각인데, 아직도 미국 백인 의료진의 절반이 그게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흑인에게는 진통제를 잘 처방하지 않는다고 한다. (백인에 비해 흑인은 진통제를 받을 확률이 60%, 히스패닉은 75%다).
하지만 흑인 환자들의 의사에 대한 신뢰를 해치는 더 심각한 문제는 미국의 역사다. 유명한 사례가 20세기에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터스키기(Tuskegee) 매독 생체실험’이다. 1932년 미국의 공중보건국이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 터스키기에서 성병의 일종인 매독을 앓고 있는 흑인 환자들 수백명에게 일부러 다른 진단을 내린 후, 치료약을 주지 않고 수십년 동안 병을 앓다가 죽는 것을 관찰하는 생체실험을 한 사건이다.
좋은 항생제가 개발되고 예방법이 발달한 오늘날은 큰 문제가 아니지만, 20세기 초중반까지만 해도 매독은 심각한 사회문제였다. 이 병에 걸리면 나타나는 피부 궤양의 모습이 마치 매화꽃처럼 보인다고 해서 매독(梅毒)이라고 부르는 이 질병은 아직도 그 근원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가장 흔히 알려진 설명은 매독은 아메리카 대륙에 있던 풍토병인데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발견하고 원주민들과 성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감염이 되었고, 그들이 돌아가서 유럽대륙에 퍼뜨렸다는 것이다.
매독이 이미 유럽 떠돌고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사람들이 (과거 나병이라 불리던) 한센병과 구분하지 못했고, 콜럼버스의 원정대가 유럽으로 돌아오는 시점에서 유럽에 대유행했기 때문에 미대륙에서 왔다고 믿었을 뿐이라는 얘기다. 정확한 기원이 어쨌든 유럽인들은 이 병이 전부 다른 나라에서 왔다고 믿고, 병에 그 나라의 이름을 붙였다. 이탈리아와 폴란드, 독일에서는 ‘프랑스병’이라고 불렸지만, 프랑스인들은 ‘이탈리아병’이라고 불렀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인접한 스페인에서 왔다며 ‘스페인병’이라 불렀고, 러시아 사람들은 역시 인접한 나라인 폴란드에서 왔다고 ‘폴란드병’이라 불렀다. 터키인들은 기독교를 믿는 유럽을 싸잡아서 ‘크리스찬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를 아직도 ‘차이나 바이러스’라고 부르는 건 국경을 모르는 질병의 원인과 전염의 책임을 타국에 전가하려는 인류의 오랜 전통(?)의 현대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류사회가 가진 이런 인종주의적 태도는 현대과학과 결합하면서 잔인한 양상을 띠게 된다. 군국주의 시절 일본제국 육군의 관동군이 운영하던 731부대가 중일전쟁 이후로 1945년 일본의 항복선언 때까지 생화학무기를 개발과 생체실험을 병행한 사실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또한 나치시절 독일 역시 강제수용소에서 유대인과 로마(집시), 소련의 포로들을 상대로 자행한 생체실험도 인류의 잔인성을 보여주는 예로 자주 언급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런 생체실험들이 의학, 과학의 발전이라는 명분하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대상이 인간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생체실험은 다른 모든 과학실험과 똑같은 룰을 따를 뿐이다. 미국 공중보건국 의사들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매독이라는 질병을 제대로 관찰해야 했고, 병이 치료되지 않으면 어떻게 발전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들은 중요한 질문 하나를 스스로에게 묻지 않았다. ‘이 환자가 내 가족이라고 해도 치료약을 거부하고 지켜볼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물론 터스키기 생체실험이 시작되던 1932년에는 매독을 완전히 치료할 수 있는 항생제가 없었다. 하지만 실험에 참여한 백인 의사들은 페니실린이라는 좋은 항생제가 나온 1942년 이후로 30년이 지나도록 병에 걸린 흑인들에게 투여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악혈(bad blood)’이라는, 민간에 떠돌던 비과학적 병명으로 말해주었고, 찾아올 때마다 치료하는 척하면서 병의 진행을 관찰, 기록해서 의학논문의 자료로만 사용했다. 그리고 실험 대상들에게 “죽으면 장례비를 대준다”는 명목으로 사후에 시체 해부와 검사를 해도 좋다는 승낙까지 받아 챙겼다.
이런 잔인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에 알려진 건 1972년이었다. 1960년대의 인권운동 이후에야 비로소 미국사회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고, 이듬해 실험은 중단되었다. 하지만 터스키기 실험은 빙산의 일각일 뿐 미국에서 흑인들이 비인간적으로 의학실험의 대상이 된 역사는 길고 참담하다. 그러니 코로나19 백신을 반드시 접종하겠다는 흑인의 비율이 타 인종에 비해 크게 낮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정부가 나의 인권을 지켜주지 않고, 의사가 나의 몸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배신감은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인 신뢰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