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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모른 척 네 삶을 살라” “인간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는다”… 빛으로 그려낸 선과 악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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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검은 사제들’
동명 영화 그대로 무대 위 올려
‘귀신쫓기’ 소재로 또 다른 매력
성가·가요·포크·클래식 등 ‘믹스’
구마예식엔 무속음악까지 선봬
생소한 라틴어와 용어 많이 등장
줄거리 모르면 장면 이해 힘들 수도
악마와 사제들이 대결하는 뮤지컬 ‘검은 사제들’. 악마는 “어두운 곳에 버려진 사람,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 네가 그들을 포기할 때 내가 함께 있을 것”이라며 약한 인간을 공격하나, 사제는 “인간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맞선다. 알앤디웍스 제공

수식어가 필요 없는 스타 강동원과 김윤석이 흥행을 이끌고 박소담이라는 신인이 이름을 알린 영화 ‘검은 사제들(2015)’. 흥미로운 소재와 짜임새 있는 이야기로 관객 540만명을 돌파한 흥행작이다. 시리즈물로 만들어지나 싶었는데 후속편 대신 뮤지컬 ‘검은 사제들’이 나왔다.

인기 영화가 뮤지컬로 만들어지는 건 그 반대만큼이나 자주 있는 일이다. 과연 ‘구마(驅魔·엑소시즘)’, 즉 ‘귀신쫓기’라는 특이한 재료를 가지고 뮤지컬 무대는 얼마나 스크린과 다른 매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뮤지컬 ‘검은 사제들’ 줄거리는 원작 영화를 고스란히 따라간다. 5000년에 걸쳐 인간 세계를 괴롭힌 최상급악마가 위기에서 도망치다 맞닥트린 한 소녀에게 빙의한다. 여러 악마와 외로운 싸움을 벌여 온 김 신부가 소녀를 구하기 위한 구마에 나선다. 하지만 이를 도와줄 보조사제가 자꾸 도망친 끝에 어린 시절 영혼의 상처를 입은 신학생 최 부제를 새로운 파트너로 맞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악마를 억누를 ‘성자(聖者)의 종’과 악마를 가둬 수장(水葬)할 새끼돼지까지 준비한 두 사제는 힘겹게 악마에 맞선다.

첫인상은 원작에 충실한 작품이다. 하지만 비슷한 장면에서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낸다. 원작과 별개로 새로운 감동과 가치를 관객에게 주는 창작물로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영화와 달리 초반부터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악마는 끊임없이 속삭인다. “우리는 어디에나 있다. 신은 너희를 버렸다.” 유혹에 흔들리는 사제들은 노래로 자신의 고통과 갈등을 풀어낸다. 영화에선 볼 수 없던 장면이다.

무대가 가장 뜨거워지는 구마 예식 장면을 보노라면 ‘인간은 누가 구원하나’라는 물음을 갖게 된다. 영화를 볼 때는 숨 막히는 전개에 미처 붙잡기 힘들었던 화두다. 악마는 말한다. “어두운 곳에 버려진 사람,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 네가 그들을 포기할 때 내가 함께 있을 것이다.”

의심은 지성을 지닌 인간의 약점이다. “너희 신은 지금 어디 있나”라는 악마 질문에 최 부제는 휘청인다. 악마가 내뱉는 말 중 가장 강력한 유혹은 “모른 척해줄 테니, 저 바깥의 것들처럼 너도 모른 척 네 삶을 살라.” 누구나 삶에서 어려운 문제에 부닥칠 때 내면에서 듣게 되는 주문이기도 하다. 힘겨운 싸움 끝에 악마를 제압한 김 신부는 “인간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모두가 바라는 정답을 들려준다.

강남 극작가와 김효은 작곡가, 그리고 오루피나 연출 등 2019년 최고 뮤지컬로 꼽히는 ‘호프’를 만든 제작진이 다시 뭉쳐 만든 작품이다. 탄탄한 줄거리에 작곡가는 가톨릭 성가부터 팝, 가요, 포크,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를 끌어다 쓴다. 사제들에 앞서 귀신쫓기를 시도하는 제천법사 굿 장면에선 장단이 귀에 착 달라붙는 무속음악까지 선보인다. 역시 작곡가도 가장 애정이 크다는 마지막 구마 예식 음악이 주는 감동이 크다.

뮤지컬 ‘검은사제들’은 무대와 조명의 유기적 결합도 인상적이다. 수직으로 치솟은 삼각기둥 모양의 구조물과 역시 삼각형 모양의 조명이 어울리며 극 성격에 어울리는 분위기와 효과를 만들어낸다. 조명 색의 변화로 무대에서 벌어지는 선과 악의 대결을 더 풍성하게 묘사한다. 배우들 노래와 대사는 물론, 합창도 대체로 귀에 잘 들렸지만 생소한 라틴어나 용어가 많이 등장한다. 또 원작 영화를 안 본 관객이라면 무대에서 벌어지는 사제들과 악마의 공방전, 그리고 악마에 붙잡힌 여고생 내면의 저항 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악마가 라틴어는 물론 중국어 등으로 내뱉는 오싹한 저주 등도 구마 예식 장면의 핵심인데 놓치기 쉬울 듯하다.

배역 소개에선 최 부제가 가장 앞서지만 극을 이끌어가는 건 김 신부다. 배우 이건명, 송용진, 박유덕이 출연하는데 지난 18일 공연에선 이건명이 좋은 연기를 펼쳐줬다. 최 부제 역은 김경수, 김찬호, 조형균, 장지후 배우가 맡는다. 악마를 붙잡아두는 여고생 이영신 역에는 세 명의 신인 배우 박가은, 김수진, 장민제가 캐스팅됐다.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에서 5월 30일까지.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