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2월 28일 오후 8시 충남 천안시 서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40대 여성이 흉기에 찔렸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뉴스1에 따르면 지인을 통해 119 구급대에 도움을 요청한 사람은 당시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A군(16)의 엄마 B씨(42·여)였다.
당시 B씨는 간까지 손상될 만큼 깊은 자상을 입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지만, 구급대원에게 “아들과 말다툼을 하다 화가 나 자신을 찔렀다”는 말만은 또렷하게 반복했다.
정신질환을 앓던 아들이 순간 격분해 흉기로 자신을 찔렀다는 사실을 끝까지 숨기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의식을 잃기 전까지 아들을 감쌌던 B씨는 결국 병원 치료를 받던 중 숨을 거뒀다.
B씨의 바람과 달리, 집안에 우두커니 서있던 A군은 경위를 묻는 경찰에게 곧바로 자신의 범행을 털어놨다. 평소 자주 애교를 부릴 만큼 살가웠던 아들은 저녁 식탁에서 B씨가 말다툼 끝에 던진 “네가 싫다”는 한마디에 돌변했다.
A군은 중학교 1학년 때만 해도 생활기록부에 “쾌활하고 주변에 항상 친구들이 많다”고 기록될 만큼 사교성이 좋았지만,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급격하게 감정조절에 어려움을 겪었다.
급기야 A군이 주의력결핍과잉충동장애(ADHD) 및 정신지체 등 지적장애, 우울증까지 진단받아 꾸준한 약물 치료가 필요하게 되자, B씨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A군을 보살피는데 전념했다.
이상증세를 보이지 않을 때 A군은 웃음이 많은 평범한 아들이었다. 아들이 여러 치료를 거쳤지만 갈수록 짜증이 늘고 날카로워져 혼자 울기도 하는 모습은 B씨 부부에게 커다란 고통이었다.
두 모자가 서로 다투는 일도 많았다. 특히 A군이 같은 말을 반복하는 행동을 할 때면, B씨도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사건이 벌어진 그날도 이 같은 이유로 모자 사이 다툼이 있었다. 다만 그날 밤 A군이 유독 분노해 갑자기 흉기를 꺼내 들고 B씨를 찌를 것이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존속살해 혐의로 불구속 재판을 받게 된 A군은 법정에서 별다른 변론을 하지 않았지만, “엄마가 보고싶고, 아빠와 함께 살고 싶다”는 말은 빼놓지 않았다.
A군의 변호인은 범행을 대체로 인정한다면서, 오랜 정신질환과 약물 복용으로 불안정한 상태를 억누르지 못한 우발적 범행임을 참작해달라고 호소했다.
1심을 심리한 대전지법 천안지원 제1형사부는 A군에게 장기 4년, 단기 3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사소한 말다툼으로 친모를 살해한 반인륜적 범행에 대한 엄벌이 필요하지만, 만 16세의 소년이라는 점과 A군의 아버지가 선처를 바라며 강한 치료 의지를 보이는 점, A군의 상태가 범행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참작했다.
A군은 곧바로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고, “엄마가 보고싶다”는 말만 반복했다. A군의 아버지 역시 끝까지 법정에 선처를 탄원했다.
이후 항소심에서 검찰이 A군에 대한 치료감호를 청구한 끝에, A군은 교정시설이 아닌 병원으로 향하게 됐다.
지난달 16일 대전고법 제1형사부는 A군에게 1심과 같은 형량을 선고하고 치료감호를 명령했다. A군이 당시 중증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주장을 받아들이면서도, 1심의 형이 가볍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은혜와 처지를 헤아리지 못하고 순간적인 화로 모친을 찔러 살해했으니 그 결과가 매우 중하다”며 “다만 중증의 심신미약이 인정되고, 치료를 받는 동안에는 증상이 조절됐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모두 고려해 양형했다”고 판시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