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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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G7·나토는 北비핵화 촉구하는데 백신 지원 타령이라니

나토 정상 ‘CVID·제재 이행’ 강조
北 미사일 시험발사 등 도발 우려
‘평화쇼’ 집착, 민심 역풍 부를 것
오스트리아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현지시간) 빈 호프부르크궁에서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미국·유럽의 집단안보체제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30개국 정상들이 그제 정상회의 공동성명에서 북한을 향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위한 대미 협상 재개를 촉구했다. “핵, 화학, 생물학적 전투 능력과 탄도미사일을 제거하고 모든 관련 프로그램을 포기해야 한다”면서 “각국이 유엔 대북제재를 완전히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고도 했다. 전날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공동성명에 담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포기’(CVIA)보다 수위가 높아졌다. ‘비핵화 없이는 대북제재 완화는 없다’는 미국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G7·나토 정상들이 한목소리로 고강도 대북 메시지를 발신한 것은 이례적이다. 북한이 세계 평화의 최대 위협국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방증이다. 나토 정상회의 공동성명에는 북한이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으면 제재의 고통만 가중될 것이라는 경고가 담겨 있다. 중국을 비롯한 어느 나라도 대북제재에 구멍을 내선 안 된다는 뜻도 읽을 수 있다.

이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에 코로나19 백신을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우려를 낳는다. 인도주의적 차원의 백신 지원을 고리로 남북 대화의 끈을 이어보려는 의도임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명분이 없고 시기도 적절치 않다. G7·나토 정상들보다 강하게 북한 비핵화를 주장해도 시원찮을 판에 백신 지원 타령을 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코로나19 감염 자체를 부인하는 데다 이미 백신 지원 거부 의사를 밝힌 바 있는 북한이 덥석 받을 리 만무하다. 국내 백신 수급 문제로 1차 접종률이 25%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에 지원을 한다면 수긍할 국민이 얼마나 있을지도 의문이다. 정부의 북한 비위 맞추기는 끝이 없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최근 한·미 연합훈련 축소·연기와 대북제재 완화를 대화 유인의 촉매제로 활용하자고 주장해 논란을 불렀다. 정부가 제재의 틈새를 찾아 북한을 도울 궁리만 하니 기가 찬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1일 노동당 중앙군사위 확대회의에서 “군은 혁명무력의 전투력을 더욱 높이고 고도의 격동태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했다. 북한이 조만간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얻어내기 위해 미사일 시험발사 등 도발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정부가 안보 태세를 다잡아야 할 때다. 남북관계의 성과를 내려는 조바심으로 임기 말 ‘평화 쇼’에 집착했다간 거센 역풍에 직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