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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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투 인구 1300만… 합법화 논란 여전 [S스토리]

타투업·의료계 찬반 팽팽

눈썹 등 미용문신 대중화 불구
의료인이 안했다면 불법 시술

‘조폭 전유물’은 옛말
수술 흉터 가리려… 개성 뽐내려고…
자신 표현하는 수단으로 자리잡아
최근 정치권에선 타투법안 발의도

1兆 시장… 현실 못따라가는 法
성인 51% “합법화 찬성”… 20대는 81%
법원서도 “현실 괴리” 소수의견 나와
“의료행위” “직업자유 침해” 논쟁 계속
30년 불법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타투에 대한 합법화 목소리가 높다. 지난달 16일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국회 앞에서 타투업 합법화를 촉구하며 등에 붙인 타투 스티커를 보이는 모습

스테인리스 작업대 위에 파란색의 멸균된 포가 깔렸다. 그 위에는 색소를 담는 작은 원통과 색소를 희석할 증류수, 거즈와 일회용 바늘이 가지런히 놓였다. 마치 수술을 앞둔 수술실처럼 긴장감이 흐르는 작업대 위로 한 여성이 팔을 올려놨다. 이윽고 작은 진동소리와 함께 그의 팔에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의 한 타투(문신) 작업실에서 만난 김모(38)씨는 이날 자신의 몸에 네 번째 타투를 새기는 중이었다. 첫 타투는 맹장 수술 흉터를 가리기 위해서였다. 흉터가 있던 곳에는 지금 고래 그림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처음엔 그저 흉터를 가리기 위한 목적이었는데 받고 보니 너무 예뻐서 더 크게 그리지 않은 것이 후회됐다”며 웃었다.

 

첫 타투 전에는 겁이 나 망설이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시술 통증이 작아 큰 고민 없이 두 번째, 세 번째 타투도 새겼다. 김씨는 “타투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스스로 만족감을 주는 예술”이라며 “타투가 내 몸의 일부가 되고,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몸에 새기는 예술.’ 젊은층을 중심으로 몸에 타투를 새기는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과거에는 연예인이나 예술가 등 ‘조금 튀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주로 타투를 새겼지만, 최근에는 평범한 사람들에게서도 크고 작은 타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타투는 대중화하고 있지만 관련 법과 제도가 따라주지 못하고 있다. 타투를 ‘조직폭력배의 전유물’로만 인식하던 30여년 전 어디쯤에서 멈춰 있다. 현행법상 타투 시술은 의료인만 가능해 대부분의 타투 시술이 불법이다. 타투를 새기는 타투이스트들은 현실을 따라오지 못하는 법 제도를 정비해 자신들을 정당한 노동자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타투 인구 300만명…20대 80%는 “타투법 찬성”

 

2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타투 인구는 300만명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눈썹 문신 같은 반영구 화장(미용문신)까지 더하면 이 숫자는 1300만명까지 늘어난다. 전 국민의 4분의 1은 타투 시술을 한 셈이다. 그러나 현행법 잣대를 대면 대부분 ‘불법’ 시술이다.

 

과거 타투는 혐오감을 주는 일탈 행위 정도로 치부됐지만, 점차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흉터를 숨기거나 눈썹, 속눈썹을 풍성해 보이게 하는 목적으로도 사용되는 등 쓰임새가 다양해지면서 타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많이 줄었다. 문신보다는 ‘타투’라는 단어를 쓰고, 타투를 새기는 이들을 ‘아티스트(예술가)’라는 말을 붙여 ‘타투이스트’라고 부르는 것에도 이런 인식이 반영됐다.

 

실제 젊은층의 경우 타투에 대한 인식이 훨씬 긍정적이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전국 성인 1002명을 조사한 결과 51%가 타투 합법화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찬성 비율은 연령이 낮을수록 더 높았다. 20대의 경우 찬성 비율은 81에 달했다. 이 비율은 30대 64, 40대 60, 50대 45%, 60대 이상 25%로 낮아졌다. 60대 이상은 반대(59%) 비율이 찬성의 두 배였다.

 

미용문신을 제외한 타투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전체의 5% 수준이었지만, 20대에서는 10%, 30대 8% 등 20·30세대에서 평균보다 높은 비율을 보여 젊은층에서는 타투가 이미 대중화한 것으로 보인다. 미용문신의 경우 여성의 45%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한국갤럽은 “이제 타투는 일상적 패션으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법원에서도 “반드시 의료인이 시술할 필요 없다”는 의견

 

그러나 법은 여전히 현실과 동떨어졌다. 타투를 불법으로 규정한 법률은 없지만, 1992년 대법원의 판례가 30여년간 타투이스트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당시 대법원은 타투 시술을 ‘의료행위’로 판단, 의사 면허가 없는 비의료인의 타투 시술을 사실상 불법화했다. 많은 사람이 찾는 타투 작업실은 대부분 불법인 것이다. 이 때문에 타투이스트들이 ‘부정 의료행위’를 한 죄로 법정에 서기도 한다. 타투유니온에 따르면 올해 4월에만 타투이스트 2명이 각각 징역 1년6개월과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벌금을 내고 전과자가 된 사람도 많다.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법조계에서도 시류를 반영한 의견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부산고법은 타투 시술로 재판에 넘겨진 타투이스트에게 유죄판단을 내리면서도 눈길을 끄는 의견을 판결문에 담았다. “(타투 시술이)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행위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의료인에 의해 그러한 위험성이 직접 관리될 필요가 없다면 (의료행위에서) 제외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 것이다. 이어 “(대법원 판례도) 1992년에 선고된 것이고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많은 의학적, 기술적 진보가 있었다는 점에 비춰 보면 검사는 ‘그때는 없었고 지금은 있는’ 새로운 반영구 시술 행위에 대해서도 의료인 수준의 위험성이 있다는 점을 충분히 입증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타투 합법화 문제는 헌법재판소에까지 갔다. 의료 목적이 아닌 타투를 의료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직업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취지의 헌법소원이 수차례 제기됐다. 최근 헌법소원을 낸 대한문신사중앙회 임보란 이사장은 “불법의 낙인을 피해 국내 타투이스트들이 도망치다시피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며 “법제화는 보건 위생을 체계적으로 관리·감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청년 일자리를 늘리는 데도 기여한다”고 강조했다.

 

◆“부작용 우려” vs “법제화로 위생 관리 체계화해야”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의료계는 바늘을 이용해 피부에 상처를 내는 타투 행위가 의료인의 고유 업무에 해당하고, 시술 과정에서 세균·바이러스 감염 등 부작용 발생 위험이 높다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해 성명을 통해 “문신은 침습적 의료행위로 의료법상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자의 문신 시술은 명백한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국회는 해당 사안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지만 얼마 전 타투업법을 발의한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그림이 그려진 등을 노출하는 퍼포먼스로 이슈화했다. 타투이스트들은 법제화를 통해 피시술자를 지킬 수 있는 제도적 관리와 규제를 마련할 수 있다며 합법화를 적극 주장한다. 타투유니온은 녹색병원과 협력해 만든 ‘타투 위생 및 감염관리 지침’을 만들어 배포하고 조합원을 상대로 이론과 실습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지침 제작에 참여한 녹색병원의 임상혁 원장은 “이전에 시술하는 모습을 보니 피시술자뿐 아니라 시술자 역시 감염 위험에 노출된 상황이 많았다”며 “병원의 위생 규정을 응용해서 타투이스트에게도 안전하고 위생적으로 시술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매뉴얼화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예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 문화적으로나 산업적으로도 중요한 분야”라며 “새로운 산업 육성으로 고용창출 등의 경제적 효과도 크다”고 말했다.

김도윤 타투유니온 지회장. 남제현 선임기자

◆ “해외선 아티스트, 국내선 범법자… 법제화로 권리 찾을 것”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의 한 타투 작업실에서 만난 김도윤(사진) 타투유니온 지회장은 타투유니온 결성 계기에 대해 “그림을 그리던 사람들이 벼랑 끝까지 몰리는 일을 보며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타투유니온은 지난해 2월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산하 지회로 결성됐다. ‘불법’의 탈을 벗지 못한 채 살아가는 타투이스트를 제도권 안에 포섭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단체가 만들어지자 타투이스트들이 처한 열악한 상황에 대한 제보가 모이기 시작했다.

 

김 지회장은 “그동안 이렇게 많은 사람이 타투 시술을 했다는 이유로 전과를 갖고 어려움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며 “고발을 당해 경찰 조사를 받던 친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법적 다툼을 벌이던 대형 작업실이 무너지는 일도 목격했다”고 전했다.

 

김 지회장은 “타투이스트들은 노동을 하고 있지만 노동자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브래드 피트와 같은 유명 할리우드 배우들이 찾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아 종종 다른 국가를 찾아 타투 작업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아티스트’로서의 대우는 입국하는 순간 사라진다. 김 지회장은 “타투 작업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범법자가 된다”며 “혹시 가방 속 타투 용품이 세관에 걸리지 않을지 조마조마하게 되는 괴리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음지에서 이뤄지는 작업이란 점을 노리는 악성 손님도 많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환불을 요구하고, 형사 고소를 하는 경우다. 일부는 ‘신고하지 않는 대가’라며 타투이스트가 재판에 넘겨졌을 때 지불해야 하는 벌금(약 500만원) 수준의 금액을 요구하기도 한다.

 

김 지회장은 “타투가 법제화돼야 제도 안에서 타투이스트들이 정당하게 일할 수 있다”며 “타투이스트들의 직업을 직업으로, 타투 시술 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해달라”고 강조했다. “이전까지는 우리가 ‘덜 시끄러웠기 때문에’ 법제화가 안 된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국회 회기를 마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할 겁니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