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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의문학의숨결을찾아] 독바위역 ‘이호철길’

원산 출신 이호철 작가 정착한 곳
서울 서민촌 풍경 생생하게 그려

서울의 지하철 6호선은 북쪽 끄트머리가 고리처럼 돌아가게 생겼고 그 고리 끝이 독바위역이다. 근처에 북한산 독바위가 있다고 해서 생긴 역명이라고 하는데 역 출입구가 하나뿐이다. 이 독바위역은 어지간히도 깊이 파놓아서 지상에까지 가려면 줄잡아 한 여섯 층 정도는 올라가야 한다. 지상으로 나오면 ‘여기 서울 맞지’ 할 정도로 어느 소도시 풍경을 보는 듯한 2차선 도로가 눈앞에 나타난다.

요즘 내 현대문학 연구는 해방 이후부터 1965년 정도까지를 ‘제1차 전후’라는 시대적 개념으로 포착해 이 시기의 문학, 특히 소설 동향을 살펴보는 것, 이렇게 되면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작가로 떠오르게 되는 사람 가운데 하나가 이호철 선생이다. 물론 1932년생으로 원산 출신인 선생 말고도 본래 1934년생이라는 작가 최인훈도 1961년의 ‘광장’이 보여주듯 이 시대를 대표한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

두 사람 모두 원산고교를 다니다가 6·25전쟁 중 1·4후퇴 직전에 펼쳐진 ‘원산 철수’ 때 미군함정을 타고 부산에 ‘낙지’했다. 이른바 북에서 남으로 온 월남작가의 대표자요, 공히 원산 출신이지만 나는 두 사람을 생각하면 스타일의 굉장한 차이를 느낀다. 최인훈이 전쟁 이후의 한국 현실을 지양할 수 있는 ‘관념의 제국’을 쌓아올린 작가라면, 이호철 선생은 자신이 땅 딛고 살아가는 삶의 환경을 아주 구체적으로 그려낸 리얼리스트였다.

휴대폰 지도 앱으로 ‘이호철길’이 있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 걷다 나는 낯익은 음식점 하나를 발견한다. 많이 달라지기는 했는데 주변 풍경이나 음식점 구조로 볼 때 분명 선생이 나를 당신 사는 곳 근처로 불러 돼지갈비를 사주던 그곳이 맞다. 그때 유난히 연기가 안 빠지는 갈비집에 먼저 앉아 백두산에서 얻었다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해 들어오는 선생을 맞이했다.

아하, 선생은 이 근처에 당신의 이름을 딴 길이 있는 곳에서 나를 만나려 하셨던 것이로군. 선생이 타계하시던 2016년에서 한두 해 전, 나는 이분이 쓴 장편소설 ‘소시민’과 ‘서울은 만원이다’를 보고 몹시 감격했던 것이, 이 두 작품에는 월남민의 대한민국, 그리고 서울 정착사가 너무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 이 작가를 현실적응을 과제로 떠안은 월남문학의 대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간주하기에 충분했다.

독바위역에서 7분여 만에 나는 수리초등학교 위쪽으로 골목벽화로 소박하게 치장한 ‘이호철길’을 만난다. 어째서 이 부근이 ‘이호철길’이냐 하는 것은 이분이 1960년대부터 불광동에 터를 잡고 살아온 분이라는 사실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나중에 선생을 뵙기는 말년의 미성아파트에서였지만 선생은 당시로서는 물밀 듯 밀려오는 서울 유입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사대문 바깥에 새로 개발되기 시작한 불광지구에 터를 잡으셨다. 그러고 보면 이 근처에는 ‘집 없는’ 기자들이 공동으로 주택조합을 결성해서 조성한 기자촌도 있었다. 지금은 은평뉴타운 자리가 된 이 기자촌은 입주를 시작하자마자 근처가 그린벨트지역으로 묶이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며칠 전 선생이 1976년에 펴낸 소설 창작집 ‘이단자’를 읽는데, ‘여벌집’이라는 단편이 눈에 뜨였다. 이 ‘여벌집’이란 집이 하나 있는 사람이 여벌로 하나 더 가진 집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집에 전세를 주고 또 난데없이 이 집이 도시계획에 편입되는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이호철 선생이 자신이 정착해 살아가는 서울에 대해 얼마나 섬세한 서민적 촉수를 드리우고 있었는가를 가늠하고도 남게 한다.

‘이호철길’은 불과 한 300미터 남짓이다. 소박하고도 아름다운 벽화를 구경하며 언덕길을 내려가자, 이곳은 또 북한산 초입의 하나로 어느 시인 친구가 나를 데리고 등산을 처음 시작할 때 데려간 곳이다. 백두산 지팡이를 짚고 만면에 평화로운 미소를 짓던 선생의 모습을 떠올리며, 선생의 작품을 더 많이 찾아 읽겠다고 생각해 본다. 나는 평생을 이 동네에서 살아온 선생이 얼마나 부동산 추이에 무심했던가를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선생은 ‘이단자’ 곳곳에 서울의 서민촌이 바야흐로 변화하는 풍경을 그토록 생생하게 그려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