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경영이 강조되면서 그 대표적인 벤치마크 사례로 꼽히는 기업이 ‘파타고니아’이다. ‘지구를 살리기 위한 사업’이라는 사명을 가진 이 글로벌 기업은 1973년 등반 장비를 만들던 작은 회사에서 출발해 지금은 클라이밍, 서핑 등 다양한 운동 장비를 전 세계에 판매하고 있다. 원래 이 기업의 사명은 ‘최고의 제품을 만들되 불필요한 환경 피해를 유발하지 않고 환경 위기에 대한 해결 방안을 실행하기 위해 사업을 사용한다’였으나, 2019년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절박성에 따라 사명을 변경하여 더 단호하고 적극적인 대응을 하기로 결정했다. ESG 경영의 핵심가치를 묻는 질문에 대해 파타고니아 관계자는 ‘책임(Responsibility)’이라는 가장 단순하고 원칙적인 단어를 꼽는다. 사업을 하면서 져야 할 응당의 환경적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사례가 없을까? 충남 홍성군 결성면에 위치한 농업회사법인 ㈜성우를 소개한다. 성우농장은 약 8000마리의 돼지를 키우는 농장이다. 축산업은 농촌 마을에서 갈등을 종종 일으킨다. 분뇨 등 축사에서 발생하는 악취로 인한 갈등이 가장 손에 꼽힐 것이다. 성우농장은 첨단 정보기술(IT)을 접목한 양돈 기술로 악취와 수질오염을 줄이는 노력을 하고 있다. 넓은 사육 면적과 쾌적한 시설, 클라우드 서버를 갖춘 스마트팜을 통해 생산성을 높여 경제적 이윤과 비용의 절감을 달성할 뿐 아니라 동물복지의 측면에서도 모범적 사례를 만들어간다. 더 나아가 농장과 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주변 돼지농장에서 발생하는 분뇨를 모아 바이오가스 플랜트를 만듦으로써 돼지를 사육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메탄가스를 자원화하고 있다. 플랜트 또한 혐기성 완전밀폐시설로 설치하여 악취와 대기오염물질의 발생을 최소화한다. 바이오가스 플랜트에서 발생하는 폐열은 마을 주민이 주주로 참여하는 마을 기업이 온실 사업을 벌일 수 있도록 기부한다. 성우농장 또한 지속가능성이나 ESG와 같은 화려하고 어려운 용어가 아닌 ‘책임’이라는 단어를 앞에 세운다.
금융 전문가였던 성우농장의 이도헌 대표는 돼지농장을 인수해 농촌에 살게 된 이후 기후변화의 위기를 피부로 체감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피해를 1차산업의 종사자들이 고스란히 받고 있는 것의 부조리함을 지적한다. 이에 그는 지속가능한 농촌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마을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독립적으로 공급하는 마이크로 그리드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러한 에너지 사업을 통해 마을 주민들의 지속적인 소득원을 만드는 방안도 고심하고 있다. 그 외에도 마을과 상생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농장이 운영하는 방목 돼지 사업도 마을 어르신들의 쏠쏠한 소득원이 되고 있다.
책임지는 기업은 어떤 모습일까? 글로벌 사례로 나아가지 않아도 우리 주변에 좋은 귀감이 되는 기업들이 있다. 어려운 개념 용어를 통해 이해관계자를 정의하기 전에 기업을 둘러싼 구체적인 ‘얼굴’들을 떠올려보면 누구에 대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도 보다 명확해진다.
1년간의 ‘ESG 동향’ 연재를 정리하며 우주를 떠올려 보았다. 138억 우주의 역사를 1년으로 환산했을 때 지구의 탄생은 9월 1일,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는 11시 59분을 넘긴 시각에 등장했다. 우리 인류는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만큼 이 지구에서 버텨낼 수 있을까? 과학자들은 어두운 전망을 하고 있다. ESG의 E는 환경으로, 우리는 흔히 기업의 환경에 대한 책임과 그 보호를 떠올린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해 위기에 놓인 대상은 ‘사람’이지 지구가 아니다. 역사를 통해 인류 없이도 지구는 얼마든지 안녕할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지구의 온도가 더 이상 높아지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함으로써 위기에 놓인 인류를 구해야 한다. 그렇기에 ESG 경영을 하는 기업은 우리의 비즈니스로 인해 영향을 받는 ‘사람’을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