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고위험군이 아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의 ‘셀프 치료’ 전환 등을 골자로 한 오미크론 관리체계 전환을 예고하면서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잦은 지침 변경에 혼란이 빚어지고, 시민들은 ‘각자도생’을 위한 각종 팁(정보) 공유에 나섰다. 학교 현장도 학생 방역 책임을 떠안게 됐다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국내 코로나19 일일 확진자는 처음으로 4만명을 돌파했다.
8일 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서울 1만1500명을 비롯해 전국에서 4만944명이 코로나19 확진자로 잠정 집계된 가운데 이날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재택치료에 대비한 상비약과 필요 물품 등에 관한 질의가 잇따랐다. 한 카페에서 이용자가 “해열제, 소화제, 지사제, 어린이용 지사제와 체온계, 산소포화도 측정기, 자가검사키트를 사 왔는데 추가로 필요한 게 있느냐”고 묻자, “코로나19 증상이 다양해 목감기약, 코감기약 등도 있으면 좋다”, “당뇨 등 기저질환 약도 떨어지지 않게 2주치 이상 확보해 두라”는 등의 댓글이 달렸다. 또 다른 커뮤니티에는 ‘재택치료 경험자’라며 “아이가 있는 집은 소아용 해열제 브루펜 계열과 아세트아미노펜 계열로 준비를 추천한다”며 “확진자는 일회용기를 쓰고 소독해 폐기하는 게 편리하다”는 글이 올라왔다.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사둬야 하는지 묻는 글도 많았다. 이에 “아이 컨디션 안 좋을 때 손에 꽂아놓으면 문제가 생겼을 때 울려 안심이 된다”거나 “혈중산소를 체크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 있다면 활용할 수 있다”는 등의 정보가 공유됐다. 이날 산소포화도 측정기는 포털사이트에 ‘많이 찾아본 공구’ 검색 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박향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코로나19 감염 후 빠른 속도로 폐렴으로 악화하는 사례가 있어 산소포화도 측정기로 모니터링했는데, 오미크론은 특성상 상기도 감염이 많아 응급상황이 적다”며 산소포화도 측정기 구비 필요성을 낮게 봤다.
정부는 10일부터 일반관리군 재택치료자의 증상 악화 시 동네 병·의원에 전화해 비대면 진료를 받으면 된다고 안내했다. 그러나 현장에는 아직 코로나19 환자 진료방법 등을 담은 의료지원 가이드라인이 배포되지 않았다. 논란이 일자 정부는 의료계와 비대면 진료 지침 보완을 논의했다.
격리 기준이 자주 변경돼 혼란스럽다는 지적도 나온다. 9일 0시부터 확진자의 격리기간은 백신 접종력, 증상 유무와 관계없이 검체 채취일로부터 7일이다. 접촉자 격리는 확진자의 동거인 중 예방접종 미완료자와 요양병원·시설 등 감염취약시설 내 밀접접촉자가 대상으로 역시 7일간 격리한다. 방역 당국은 지난달 24일 미접종 확진자·밀접접촉자는 10일 격리로 지침을 변경했으나, 보름 만에 다시 지침을 변경한 것이다.
새 학기 자체 코로나19 검사체계를 운영하고, 감염상황에 따라 등교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일선 학교의 고민도 깊다. 학교장과 보건교사는 물론이고 담임교사까지 방역 업무에 관여해야 하지만 제대로 될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김갑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부회장(서울보라매초 교장)은 “학교가 자체적으로 방역 업무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의사 자격증도 없는 교사들이 조사하고 검사하는 걸 학부모가 믿어줄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셀프치료’에 대한 불안이 확산하자 정부는 재택치료자가 지켜야 할 기본적인 행동요령 안내문 등 후속조치를 마련해 이르면 10일 발표하기로 했다. 김탁 순천향대 감염내과 교수는 “개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정부에서 행동요령과 같은 안내를 적극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이날 국회 예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신속항원검사 양성률이 높아지면 적절한 시점에 신속항원검사만 가지고도 팍스로비드(코로나19 경구용 치료제)를 처방할 수 있도록 검토하고 있다”며 “검사, 처방, 약품 배송이 신속하게 이뤄지도록 절차를 점검·개선하겠다”고 말했다.
◆검사 급한데 진단키트는 품귀… 병원선 환자 뒤섞여 북새통
“자가진단키트를 구하려고 여기저기 발품을 팔고 있는데 물량이 바닥났다네요.”
8일 오후 경북 안동시에서 만난 직장인 김모(40)씨는 점심을 거른 채 자가진단키트를 사기 위해 동네 약국을 돌았지만 허탕을 쳤다고 씁쓸해했다. 김씨는 설 연휴에 만난 동생이 이날 오전 밀접접촉자로 분류됐다는 소식을 접해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했다. 김씨는 “혹시 직장 동료에게 피해를 미칠까 봐 걱정이 된다”면서 “자가진단키트를 구할 수만 있다면 웃돈을 주고서라도 사고 싶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나흘째 3만명 대를 기록한 가운데 전국에서 자가진단키트 물량 부족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전파력이 큰 오미크론 변이가 우세종이 되면서 자가진단키트 수요가 급증했지만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밀접접촉자 등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있어도 60세 이상 고령자거나 밀접접촉자 등 고위험군이 아니면 선별진료소에서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받을 수 없게 돼 자체적으로 간이검사를 하려는 사람이 늘면서 부족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병·의원 역시 신속항원검사(RAT)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 일부 병원은 밀려드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신속항원검사를 예약제로 전환한 상태다. 경북 구미 한 의원 간호사 정모(32)씨는 “검사 가능 여부를 묻는 전화로 전화통이 뜨거울 지경”이라며 “의원을 찾았다가 긴 줄을 보고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일부 병의원에서는 코로나19 의심환자와 일반환자가 한 공간에 대기하는 현상마저 일어나고 있어 불만이 커지고 있다.
울산에선 PCR 우선 검사 대상을 숙지하지 못한 고령자나 밀접접촉자가 신속항원검사 대기줄에 서있다가 뒤늦게 자리를 옮기는 일이 빈발하고 있다. 신속항원검사에선 스스로 검사를 하다 보니 방법을 몰라 헤매거나 콧속을 쉽게 찌르지 못하는 사람이 속출해 대기줄에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전날부터 시행된 자기기입식 역학조사도 일부 보건소에서는 서버 접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오류가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역학조사는 확진자가 방역 당국이 보낸 링크에 접속해 스스로 동선, 성명, 동거가족, 근무지 등을 입력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전주교도소의 코로나19 확산세도 심상치 않다. 전주시에 따르면 지난달 27일부터 현재까지 전주교도소 내 확진자는 23명이다. 교도관 4명, 재소자 19명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 확진 판정을 받은 교도관은 재택치료 중이며, 재소자는 1인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전주교도소는 다른 교정시설로 확진 재소자들을 옮기고 있다. 이번 집단 감염은 재판 일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주지법 관계자는 “전주교도소 내 확진자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어 ‘가능한 한 재판을 연기해달라’는 공문을 받았다”면서 “재판부가 판단해 급하지 않은 재판은 연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시는 취약계층에게 무료 제공하기로 한 자가진단키트 공급 일정을 연기했다. 조달청 나라장터 쇼핑몰에서 자가진단키트 구매를 시도했으나, 실제 판매가 이뤄지지 않아 물량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식약처 등에 요구 분량 공급 요청을 했고 2월 3주차부터 순차적으로 공급해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다”면서 “임신부와 중증장애인 등 시급성이 높은 대상자부터 배포하겠다”고 설명했다.
제19회 전국장애인동계체육대회 아이스하키와 청각장애 컬링 경기는 확진자 발생으로 취소됐다. 전날 검사에서 아이스하키 선수 1명과 청각장애 컬링 관계자 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한편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0시 기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3만6719명이다. 지난 6일 3만8690명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사망은 36명으로 그간 10~20명대를 기록하던 데서 다소 증가했다. 위중증은 268명이며, 누적 확진자는 108만1681명이다.
◆해열제·체온계·소독제 등 직접 챙기고 증상 악화 땐 동네병원서 비대면 진료
방역당국이 고위험군 환자를 집중 관리하는 방식으로 재택치료 체계를 전환키로 하면서 고위험군이 아닌 60세 미만 무증상·경증 환자는 스스로 해열제 등으로 건강 상태를 관리하고 아프면 비대면 진료를 받는 ‘셀프치료’를 해야 한다. 상황별 대처법을 숙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졌다.
8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방역당국은 10일부터 60세 이상, 50대 기저질환자·면역저하자는 ‘집중관리군’으로, 그 외는 ‘일반관리군’으로 분류해 집중관리군에 대해서만 건강 모니터링을 한다. 보건소에서 일반관리군으로 분류됐다는 안내를 받으면 집에 머물면서 스스로 건강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일반관리군에게는 해열제, 체온계, 산소포화도 측정기, 세척용 소독제, 자가검사키트 5종으로 구성된 재택치료 키트가 제공되지 않는다. 격리 시 이런 물품이 필요하다면 직접 구매해야 한다.
일반관리군은 격리 중 증상이 악화하거나 진료가 필요할 경우 다니던 병·의원이나 전국 호흡기전담클리닉, 호흡기진료지정의료기관에 전화를 걸어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다. 호흡기전담클리닉·호흡진료기관은 포털사이트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재택관리지원 상담센터’에 전화해도 된다. 밤에 갑자기 열이 나는 등 문제가 생기면 재택관리지원 상담센터를 이용할 수 있다. 서울은 강남·강북으로 나뉘어 의사 3∼5명, 간호사 15명이 24시간 전화를 받고 있다. 상담센터 연락처는 보건소에서 안내하고, 추후 각 지자체 홈페이지에 공개된다. 비대면 진료비용은 무료다.
확진자는 임의로 동네병원을 찾아가면 안 된다. 대면진료는 외래진료센터에서만 가능하다. 이곳에서 엑스(X)선 사진 촬영, 주사형 항체치료제 치료 등을 받을 수 있다. 전국 외래진료센터는 이날 기준 수도권 33곳을 포함해 총 67곳이다. 외래진료센터 위치와 연락처는 각 보건소에 문의해야 하며, 이동 시 자차, 도보, 방역택시가 권고된다.
비대면·대면 진료 뒤 필요한 약을 처방받을 수 있다. 각 의료기관이 처방전을 약국으로 보내고, 약국에서 약을 조제한다. 약은 동거 가족이 수령하는 것이 원칙이다. 확진자가 혼자 사는 경우라면 보건소에서 약을 배송해준다.
당국은 재택치료 중 의료 조치나 응급 상황이 필요한 사례의 비율이 높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시 조사 결과 지난해 10월부터 재택치료자 중 병원과 생활치료센터, 응급실로 옮긴 비율은 각 1.9%, 1.1%, 0.4%로 나타났다.
정부는 소아와 임신부는 재택치료 ‘집중관리군’에 포함되진 않지만, 별도의 관리 체계를 구축해 응급 상황 등에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