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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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교내 차별 너무 힘들어요”… 학업 중단 30%가 ‘부적응’ [학교 밖 떠도는 다문화 청소년들]

5년새 학업 중단 5705명… 생업 위해 단순직 내몰리기도

외모 달라 학교 부적응 호소
학교 등급 올라갈수록 심해
교문 밖 학생 지원정책 전무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 시급

사교육 등 받을 형편 안 돼 사실상 방치
13∼18세 서비스업 등 종사 비중 60%
전문직 관련·사무직 비율 9.7%에 그쳐

차별 경험 다문화 학생들 “참고 넘겼다”
교우관계 형성 못해 학업 지장 악순환
전문가 “학생 다문화 감수성 키워줘야”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A(20)씨는 일용직을 전전하고 있다.

 

A씨는 마음의 상처로 중학생 때 학업을 중단했다. 학교생활 내내 다문화가정 자녀라는 이유로 다른 학생들에게 수시로 놀림을 받았고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특히 보호해 줄 것으로 기대한 담임교사조차 A씨를 이름 대신 ‘다문화’로 부르며 공공연한 차별을 가한 건 큰 충격이었다. A씨는 유년시절의 그을음과 피해의식에 압도당해 두문불출하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가끔 축 처진 어깨로 책가방을 멘 ‘다문화 학생’을 볼 때면 형언할 수 없는 울분이 가슴을 채운다.

 

위 사례는 전국 다문화지원센터의 일부 상담 사례를 각색한 것이다. 국내 다문화가정 학생 수는 2020년 기준 16만명으로 전체 학생의 약 3%를 차지한다.

 

2016년(8만8000명)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이런 추세라면 학교를 누비는 다문화 학생들의 모습도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될 전망이다.

 

그러나 학교 부적응을 호소하며 제 발로 교문을 나온 다문화 청소년도 적지 않아 이들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21일 교육부 등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학업을 중단한 학령기(7~18세) 다문화 청소년은 5000여명에 이른다. 이 중 약 30%는 질병, 유학, 해외출국 등 개인 사유가 아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자퇴서를 제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내에 남아 있는 학생들도 상당수가 사회적 차별을 겪었으나 속으로 삭이며 학업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동급생들과 성장환경이 다르다고 이른 나이에 ‘차별’을 체감하면서 급기야 “학교 가기가 싫다”며 절규하는 아이들을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적응에 내쫓겨도 정책 실종…행복 찾을 길 요원

 

국민의힘 조명희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2020년 5년 동안 학업을 중단한 다문화 청소년은 5705명이다. 이 중 1692명(29.7%)이 ‘학교 부적응’을 이유로 학교를 그만뒀다. 연도별로는 2016년 283명(32.3%)에서 재작년 344명(34.9%)으로 규모와 비중 양면에서 증가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다문화 청소년의 학업 중단율이 0.88%에서 0.67%로 낮아졌으나 정작 학업 중단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심각한 부적응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학교 등급이 올라갈수록 학업 중단율은 물론 중단 사유에서 ‘학교 부적응’이 차지하는 비중도 올라갔다. 예컨대 2020년 기준 학업 중단율은 초등학교 0.57%, 중학교 0.69%, 고등학교 1.42%였다. 이 중 부적응이 중단 이유였던 경우는 각 19.3%, 50.7%, 73.9%로 집계됐다. 중학교에서는 학업을 중단한 다문화 청소년 2명 중 1명이, 고등학교에서는 10명 중 7명 이상이 원치 않게 정규교육 과정을 이탈했다는 얘기다.

학교 밖 ‘행복’을 찾아 떠난 아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장한업 이화여대 다문화연구소장은 “이들이 학업을 중단한 후 기술을 익혀 취업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며 “사교육을 받을 형편도 아니어서 사실상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학업 포기에 대한 트라우마와 우울증 등으로 공교육에 재진입하지 못하고, 성인이 돼서도 실업상태로 남는 사례가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끝내는 생업을 위해 단순 노무와 서비스업에 내몰리기도 한다.

 

여성가족부 산하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이주배경청소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취업자인 13~18세 다문화 청소년 중 단순 노무 및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비중은 60.3%인 반면, 전문직 관련 및 사무직은 9.7%에 그쳤다. 19~24세도 각각 48.5%, 17.5%로 비슷한 추세를 보였다.

 

당국의 다문화교육 정책에서 학교 밖 다문화 청소년을 위한 지원방안이 없다시피 한 현주소도 우려를 더한다. 교육부는 최근 한국어 교육 강화 등이 골자인 ‘2022년 다문화교육 지원계획’을 내놨으나 제도권 밖 학생들을 위한 정책은 전무했다. 교육부 정책이 원칙적으로 학내 학생들을 지원하는 데 한정될 수밖에 없어 확장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유관 부처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주배경청소년재단은 다문화 청소년의 학교 재진입과 학교 적응을 돕는 ‘레인보우스쿨’을 전국 25개소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학교에서 학업 중단 청소년을 다문화 청소년 관련 기관에 연계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아 참여율 제고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학교 현장에서는 “공교육과 단절된 아이들을 도울 방법이 사실상 전무하다”며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상당하다.

 

◆친구·교사 차별 못 견뎌…외로운 아이들

 

학교 안 아이들 역시 표류하는 건 매한가지다. 여성가족부의 ‘2018 전국 다문화가족 실태조사’를 보면 다문화 학생의 약 9%는 최근 1년간 차별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직전 조사인 2015년(6.9%)에 비해 증가한 수치다. 대응 형태를 보면 ‘옳지 않다고 여겼으나 참고 넘어갔다’(42.7%)가 가장 많았고,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29.8%)는 경우도 상당했다.

학교 부적응 이유로는 응답자의 과반이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서(53.5%)’를 꼽았다. 이어 ‘외모가 달라서(10.3%)’, ‘교사·교수의 차별대우(7.3%)’ 등을 거론했다. 이 밖에 학업 자체가 원인인 ‘학교공부가 어려워서(63.6%)’,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해서(12.0%) 등도 응답률이 높았다. 대구 지역의 한 ‘정책학교(다문화학생 비중이 높은 학교)’ 교사 D씨는 “일반 학교는 정책학교에 비해 교우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 때문에 학업에도 지장이 생기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며 안타까워했다.

 

일반 학교에 적응이 어려운 다문화 청소년은 대안학교에서 위탁교육을 받을 수 있다. 서울시에 있는 위탁형 대안학교는 현재 40곳이다. 그러나 1년 2학기제가 원칙이어서 총 기간이 2년으로 한정돼 있다. 이에 어쩔 수 없이 원래 다니던 학교로 다시 돌아간 뒤 부적응을 겪고 학업 포기에 이르는 경우도 많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학교 밖 학생들은 공교육에 재진입하고, 학내 학생들은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 소장은 “다문화 청소년의 큰 장점이 이중 언어 구사력이다. 공립 특수학교를 만들어 언어적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제공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자신의 특장점을 살려 전문성 있는 사회 일원으로 거듭나게끔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수현 중앙대다문화콘텐츠연구소 연구교수는 “현행 다문화정책 기조는 동화주의적 성향이 짙다”며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다양성을 인정하고 이해를 증진시키는 교육 방향으로 ‘다문화 감수성’을 키워야 학교 안팎 차별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안병수·박유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