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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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빈민의 처참한 절규 너머… 닿을 수 없는 푸른 오아시스 [김한들의 그림 아로새기기]

(78)송창이 보여준 예술의 힘

한국 현대사의 비극 전쟁과 분단을 담은 ‘그곳의 봄’에선
유엔군 화장장에 핀 꽃 그려 전장서 스러진 생명들에 헌화
전쟁 후 폐허와 가난, 개발과정의 민낯을 보고 자란 작가
눈으로 보이는 실체와 그 이면의 진실을 형상화하려 노력
1978년 서울의 쓰레기 매립장으로 지정된 난지도는 불과 15년 만에 100여 미터의 쓰레기 산이 되었다. ‘난지도-매립지’(1984) 학고재 제공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올해는 제59회 베니스비엔날레가 열리는 해이다. 베니스비엔날레는 베네치아에서 2년마다 개최되는 국제 미술 전시회다. 전시의 일부를 국가관 파빌리온으로 운영해 ‘미술계의 올림픽’으로 불린다. 베니스비엔날레는 1895년 시작한 이래 줄곧 매 홀수 해에 열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팬데믹 여파에 연기해 3년 만에 개최를 확정했다. 축제 같은 행사의 귀환을 반기며 사람들은 들뜬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 파빌리온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공식 성명을 냈다. 러시아가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고 우크라이나를 침공, 수도 키이우(키예프)에 진입하려 한 날이었다. 우크라이나 파빌리온의 팀원들은 성명을 통해 피난에 흩어진 와중에도 예술 활동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그리고 전 세계 예술인들에게 우크라이나와 예술, 표현의 자유를 향한 지지를 호소했다.

 

우크라이나 파빌리온은 올해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작품을 선보일 수 있을까? 꼭 그럴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그러지 못할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우크라이나 파빌리온이 우크라이나와 예술, 표현의 자유를 함께 지지해달라며 호소한 것은 예술이 가진 힘 때문일 것이다. 예술은 시각적으로 발언해 우리를 각성시키고, 사고하게 하고, 생각 또는 마음에 변화를 일으킨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개인의 변화로부터 시작하기에 결국 예술은 세상을 바꾸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송창(1952~)은 이렇게 예술이 가진 힘을 보여주는 작업을 한다. 다수의 민중미술 동인전을 비롯해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학고재 등에서 전시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등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송창 작가

#송창의 장소와 시간이 교차하는 풍경

 

송창은 한국의 풍경을 그리는 작가이다. 다만, 그의 작품에서 풍경은 장소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늘 역사와 사건이 함께 자리 잡고 있다. 장소와 시간의 축이 교차하는 세계다. 송창은 1952년 한국전쟁의 혼란 속 전라남도 장성에서 태어났다. 전쟁 이후 폐허가 된 국토와 가난을 목격하며 성장했다. 그림에 소질을 보여 대학 회화과에 진학할 무렵에는 전후 복구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안정 대신 또 다른 역사적 사건이 세상과 삶을 흔들었다. 민주화 운동을 저지하는 신군부에 대항하는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조선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한 작가는 지인들을 보기 위해 광주로 달려갔지만 길이 막혔다. 하루가 지나서야 도착해 마주한 모습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처참했다.

 

송창은 역사와 사건, 국가권력이 사회와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작가로서 예술적 관점에서 역사, 사회적 문제에 접근, 고찰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5·18 민주화운동 이후 미술을 통해 사회에 발언하는 민중미술 작가들이 활발히 활동 중이었다. 민중미술 대열에 합류해 현실 참여적 성향의 동료들과 교류를 시작했다. 그중 광주의 조선대와 서울의 중앙대 출신으로 이루어진 ‘임술년’에 동인으로 참여했다. 임술년으로 불리지만 1982년 서울 덕수미술관에서 창립전을 연 이들의 전체 이름은 ‘임술년 구만팔천구백구십이에서’이다. 1982년은 임술년이었고 당시 남한 총면적은 9만8992㎢이었으니 지금, 여기라는 의미다. 지금, 여기서 시작하겠다는 마음으로 송창과 박흥순, 이종구, 전준엽, 황재형 등이 함께했다.

임술년이 모여서 하고자 한 일은 다음 창립선언문의 일부에서 볼 수 있다.

 

“우리가 갖고져 하는 시각은 이 시대의 노출된 현실이거나, 감춰진 진실이다. 그것은 ‘인간’ ‘사물’ 또는 우리들 스스로가 간직해야 할 아픔이며, 종적으로는 역사의식의 성찰, 횡적으로는 공존하는 토양의 형성이다. 우리는 다원적인 이 시대의 모든 산물을 수용하지만, 문화의 오류를 구체적이고 명료한 언어로서 얻고져 하며, 현실에 드러난 불확실한 과도적 상황을 솔직하게 형상화 할 것이다.”

 

즉, 그들은 세상 속에서 노출된 현실과 감춰진 진실을 모두 그리고자 했다. 그 방법은 추상이 아닌 형상을 통한 명료하고 구체적인 시각 언어로의 표현이었다.

유엔군 화장장에서는 특히 영국군 화장이 많이 이루어졌다고 알려졌다. ‘그곳의 봄’(2014). 학고재 제공

#‘매립지-신도시’부터 ‘그곳의 봄’까지

 

송창은 임술년 창립전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그가 작품 속에서 다루고자 한 것은 서울 변두리의 풍경이었다. 그는 대학 졸업 이후 서울 근교 학교에서 미술 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매일 출퇴근하며 바라보는 창밖 풍경은 개발도상국이 처한 씁쓸함을 자아내는 현실이었다. 이제는 부동산이 비싼 동네가 된 난지도와 개포3지구 등 쓰레기 매립지의 모습은 더욱 그랬다. 도시가 만들어 낸 쓰레기 산 아래서 원주민들은 떠나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 시흥의 산동네와 강남의 난민 천막촌도 마찬가지였다. 아파트 개발을 위한 철거 이후 일부 원주민들은 길바닥에 나앉았다. 집 없이 잔혹한 생활고 속에 사람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갔다.

 

‘난지도-매립지’(1984)는 이러한 도시 변두리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가로 길이가 3m에 이르는 커다란 이 작품은 가까이서는 정확한 모습을 파악하기 어렵다. 점점 뒤쪽으로 발걸음을 옮길수록 눈에 들어오는 것은 화면의 왼편에 뒤엉킨 사람들이다. 화면 가장자리의 불도저와 그 아래의 경고문 ‘불도저 주변 접근 엄금(10m) 이내 마포구청장’이 무색하게 사람들은 불도저에 몸을 딱 붙인 채 뭉쳐 있다. 그 오른편과 뒤편으로는 쓰레기가 산처럼 틈도 없이 매립되어 쌓였다. 사람들이 불도저가 위험한 걸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그들에게는 나란히 서 있을 공간적 여유조차 없어 보인다.

 

송창은 이 작품에서 매립지 사람들이 처한 고통을 형상으로 우선 표현했다. 그들이 처한 괴롭고 고통스러운 상황은 그로테스크하게 뒤엉킨 군상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뒤엉킨 모습은 몸부림치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작가는 이를 분방한 필치로 그려냈다. 그려진 사람들은 어쩐지 검붉은 색의 물감으로 타들어 가듯 칠해졌다. 한데 뭉쳐 썩어가는 쓰레기가 원주민의 삶을 태우는 상황과 맞물린다. 반면 저 멀리 보이는 신도시의 아파트는 푸른색으로 칠해졌다. 맑은 공기가 느껴져 상징적인 색의 대비적 사용을 알게 한다.

 

초기 작업에서 개발 도시 근경을 담은 송창은 이후 분단의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 분단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곳의 봄’(2014)은 분단 풍경을 다룬 작품 중 하나다. 세 개의 화면으로 분할된 구조의 대형 회화 작업이다. 왼쪽의 화면에는 묘지에 많이 핀다고 알려진 하얀 망초꽃이 햇살을 받은 노란 빛으로 칠해졌다. 가운데 화면에는 벽들이 세워져 있고 그 위로 물감 덩어리가 꽃의 형태도 전면에 뿌려졌다. 오른쪽의 화면에는 꽃나무 아래에 영국을 상징하는 견종인 래브라도 리트리버가 우두커니 있다.

 

송창이 그린 이 대형 작품은 유엔군 화장장 시설을 그린 작품이다. 파주와 연천, 포천, 철원 등 전쟁이 가장 또렷한 흔적을 남긴 도시를 다루며 찾아낸 장소다. 그는 벽처럼 묘사한 유엔군 화장장 시설에 놓인 조화를 두꺼운 물감층으로 그려냈다. 이를 통해 화장장의 풍경은 그림 속 풍경이 아닌 현실의 풍경으로 이어진다. 그곳의 꽃은 여기의 내가 만질 수 있는 촉감적 대상으로 나타난다. 이 조화들은 작가가 전쟁에서 비롯한 죽음에 바치는 애도의 헌화이자 시들지 않는 꽃으로 건네는 위로다. 수십 년 동안 분단 상황을 다루는 그의 작품은 전쟁이 절대 끝나지 않았음을 상기시킨다. 이를 통해 최선의 답을 위한 고민이 흐려질 무렵 그것을 다시 제기하는 역할을 한다.


김한들 미술이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