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울진과 강원 동해 등에서 발생한 산불이 건조한 날씨와 강풍을 타고 사흘째 확산하고 있다. 대형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자 산불 진화가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겨울 가뭄으로 산불발생 위험이 큰 상황과 대형 산불이 빈발하는 봄철을 앞둔 시점에도 산림당국이 촘촘하게 대처하지 못하면서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산불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현재 경북 울진과 강원 삼척, 강릉, 동해 등 전국 7개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로 축구장(0.714㏊) 2만1500개에 달하는 1만5420㏊가 불에 탔다. 울진 1만2695㏊, 삼척 656㏊, 강릉 1825㏊, 동해 169㏊ 등의 산림과 주택이 잿더미가 됐다.
특히 울진∼삼척 일대에 진화 헬기 대부분이 투입됐지만 짙은 연무로 불 머리를 진압하지 못했다. 지난 4일 오전 11시17분 울진군 북면 한 야산에서 시작된 산불은 하루 만에 3299㏊, 이틀째엔 8671㏊, 사흘째엔 1만3351㏊를 집어삼켰다. 산불 영향 구역이 워낙 넓은 데다 헬기 등 진화 전력이 분산돼 산림 당국이 진화에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일부 현장에선 “헬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아우성도 나왔다. 불길을 잡지 못한다면 2000년 4월 발생한 산불처럼 장기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이날 오후 5시 기준 산불 화선의 40∼50%가 진화됐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산불진화헬기가 철수함에 따라 진화차 267대와 산불진화인력 1874명을 동원해 야간 산불 확산을 막는 데 주력하고 있다. 중대본에 따르면 지난 5일 강릉시 옥계면에서 대피 중이던 80대 여성이 숨진 것 외에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주민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울진 323채, 동해 62채, 강릉 등 기타 140채 등 주택과 시설 463채가 소실됐다. 이번 화마로 울진과 삼척, 동해에서 7330명이 대피했다.
이번 산불은 대낮에 발생했음에도 초동 대응이 미흡하고 인력·장비 배치 등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당국은 이날 동해안 산불 진화를 위해 운용 중인 헬기는 100여대라고 밝혔지만 산림청 헬기(47대)의 3분의 2 정도는 의무정비나 항공방제용 소형 헬기로 현장에 투입되지 못했다.
울진 산불 피해지역으로 진화헬기 투입 쏠림현상이 나타나자 최문순 강원지사 등이 재난당국에 헬기 조기 투입을 요청하기도 했다.
정부는 이날 울진과 삼척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했다. 대형산불 사례 중에선 2000년 4월 동해안 산불, 2005년 강원 양양 산불, 2019년 강원 동해안 산불에 이어 네 번째 특별재난지역 선포다.
◆한 마을 주택 절반이 잿더미… “무심한 하늘, 이제 어디로 가”
“하루아침에 집이 타버렸어. 목숨 건진 것은 다행이지만 눈앞이 캄캄해.”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6일 경북 울진군 북면 나곡리. 주민 김모(82)씨는 까맣게 타버려 뼈대만 남은 집 기둥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처음 불이 난 지난 4일 마을 이장이 “불이야”라고 소리치기 전까지만 해도 김씨는 집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헐레벌떡 김씨가 집을 나왔을 땐 미세먼지가 짙게 낀 것처럼 뿌연 연기가 마당을 둘러싸고 있었다. 김씨는 그렇게 맨몸으로 집을 나섰다.
하지만 다음날 찾은 집은 잿더미가 됐다. TV, 장롱, 침대, 싱크대, 옷가지 등 모든 게 타버렸다. 김씨는 마음에도 까만 재가 내려앉은 것만 같다고 했다. ”하늘도 참 무심하지. 내 고향인 여기서 살다 죽으려고 했는데 이제 어디로 가야할지…”
이 마을 주민들은 이번 불이 22년 전 발생한 삼척·울진 화재와 ‘판박이’라고 입을 모았다. 2000년 4월12일 제16대 총선을 하루 앞두고 삼척에서 난 불은 울진 방향으로 남하해 주민 수천명이 대피하고 재산피해가 잇따랐다. 특히 나곡리의 피해가 컸다. 나곡2리 이장 전도중(67)씨는 “당시에도 사이렌이 시끄럽게 울리고 주민 모두 학교로 대피했었다”며 “주변 산이 모두 타버려 더 탈 곳도 없이 민둥산으로 변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소곡1리에서 만난 주민 한승현(61)씨는 하루아침에 이재민이 됐다. 세숫대야에 물을 퍼 연신 집에 뿌려댔지만 집채만 한 불기둥에는 모든 것이 헛수고였다. 김달웅(78)씨는 “벽 한쪽에 고이 걸어둔 부모님 사진은 물론 족보마저 화마와 함께 사라졌어.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정말 모르겠어”라며 옷소매로 눈가를 벅벅 닦아냈다.
산불 임시 대피소인 울진국민체육센터는 정적만 가득했다. 가로·세로 3m, 높이 2.5m짜리 텐트 50여동이 마련돼 있는 이곳에는 긴급대피한 인근 주민 530명이 머물고 있다. 검성리 주민 김진귀(81)씨는 좁은 텐트 안에서 수시로 몸을 뒤척였다. 혈전증으로 지난달 중환자실에서 퇴원했는데 이번엔 천재지변이 눈앞에 닥쳤다. 김씨는 “집은 물론 농기계까지 싹 다 타버려 올해 농사는 물 건너갔어”라며 “키우던 개가 목줄이 매인 채 주인이라고 꼬리를 흔드는 걸 보고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말했는지 몰라”라고 말했다.
같은 날 강원 동해 시내는 ‘시가전’을 벌이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묵호항 일대는 검은 연기에 휩싸여 앞이 보이지 않았고, 매캐한 냄새가 도심 전역에 진동했다. 연기가 걷힌 곳에는 불에 타 폐허가 된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곡동 주민 이모(32)씨는 “밤새 시내 근처 주택에서 불기둥이 벌겋게 솟아나는 등 전쟁난 것 처럼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고 전했다.
동해 망상해수욕장 인근에서 양봉업을 하는 박영한(68)씨는 “동해 시내 양봉농가 모두 피해가 커 망연자실하고 있다”며 “앞으로 먹고 살 걱정이 크다”고 마른 세수를 했다. 동해시 임시대피소에서 만난 박승권(68)씨는 “2년 전에 큰불이 났을 때는 다행히 불길이 비켜가 이번에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집이 타버려 앞으로가 막막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바짝 마른 침엽수림에 ‘양간지풍’ 불쏘시개 역할
이번 산불은 건조한 날씨와 강풍 등 기상적 요인과 양간지풍(襄杆之風·푄현상) 등 지형적 요인, 침엽수 위주의 수종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초대형화하고 있다.
6일 산림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최근 3개월간 전국 강수량은 13.3㎜로 평년 대비 14.6%에 불과했다. 강원과 영남지역 곳곳에 건조특보가 발령된 가운데 울진∼삼척 산불이 발화해 확산한 이달 4∼5일에는 최대순간풍속 초속 22.6m의 ‘태풍급’ 강한 바람이 불기도 했다.
건조한 날씨와 강풍 등 기상적 요인 외에 지형적 요인도 피해를 키우고 있다. 동해안지역 산불의 ‘주범’ 역할을 하는 것은 ‘양간지풍’이다. 백두대간이라는 가파른 지형과 태풍급의 봄철 강풍을 타고 산불이 순식간에 확산하는 것이다. 양간지풍이 기승을 부리는 봄철 산불은 어김없이 대형화했다. 권춘근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사는 “우리나라가 남고북저 기압 상태일 때 주로 나타나는 게 양간지풍”이라며 “강한 서풍이 태백산맥을 넘으면서 고온건조하게 바뀌게 되는데 이때 순간 돌풍이 발생해 강원 영동 등 동해안 지역에 대형 산불 요인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계절 내내 잎이 있으면서 인화력이 강하고 내화성이 약한 소나무는 대형 산불의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된다. 권 연구사는 “활엽수는 겨울에 잎이 없는데, 침엽수인 소나무는 사계절 내내 탈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며 “송진에 함유된 테라핀 성분은 불의 강도를 높여주고 유지하는 휘발성이기 때문에 대형 산불로 가는 화약고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요인 때문에 국내 주요 대형산불은 모두 봄철, 동해안지역에 집중됐다. 최근 15년간 가장 피해가 컸던 산불은 2020년 4월 24∼26일 경북 안동에서 발생한 산불이다. 산림 소실 규모는 1944㏊다. 2000년 이후로 범위를 확대하면 2000년 4월 7일 삼척 등 강원 동해안 5개 시·군에서 발생한 산불 피해가 가장 컸다. 산림청에 따르면 강원 동해안 산불은 191시간 동안 이어지면서 산림 2만3794㏊를 태웠다.
2019년 4월 초에는 강원 고성에서 산불이 발생해 사흘간 강릉, 인제 등으로 번지면서 2872㏊를 태웠다. 2005년 4월4일 강원 양양에서 난 산불은 이튿날 강풍을 타고 천년고찰 낙산사까지 덮치면서 대웅전을 집어삼키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