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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의 떠오르는 현대미술가가 400년전 정물화를 소환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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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리에아키 ‘뱅가드’전 김시종 작가
“오늘날 세태, 네덜란드 정물화 떠올라”
‘스틸라이프’ 아틀리에아키 제공

어두운 배경이 깊이감을 더하는 화면 한가운데, 도자 꽃병이 놓여 있다. 조그만 꽃병을 압도하는 부피감을 가진 수십송이 꽃과 풀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세상 모든 종류 꽃을 다 모아 가진 것을 자랑하듯 제각기 다른 크기와 색, 형태를 가진 꽃송이들이 활짝 피었다. 까만 배경이 꽃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이런 작품, 어디서 많이 본듯 한 이라면 미술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다. 바로 17세기에 대유행한 네덜란드 정물화를 연상시키려 의도된 사진 작품이기 때문이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 갤러리 아틀리에아키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뱅가드’에서 만날 수 있는 30대 사진 작가 김시종 작품 ‘스틸라이프’(still life·정물화)다. 젊은 현대미술가인 작가가 2022년에 400년 전 정물화를 소환한 이유는 뭘까.

정물화, 영어로는 ‘스틸 라이프(still life)’, 프랑스어로 ‘나튀르 모르테(nature morte)’는 ‘움직이지 않는 생명’, ‘죽은 자연’이란 뜻이 담겨 있다. 정물화라는 장르가 만들어진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에게 그림을 주문하는 이들은 신흥 부르주아지였다. 종교화가 저문 뒤, 이들은 부를 과시하기 위해 수입해온 보석, 사치품들로 화가들에게 화려한 정물화를 그려달라 주문했다. 동시에 청교도 영향을 받았기에, 사치품 옆에 빠뜨리지 않고 썩은 생선, 해골 등을 그렸다. ‘죽음을 기억하라’, 메멘토모리 메시지를 남겼던 것.

김 작가는 오늘날 세태에 당시 네덜란드 정물화를 떠올렸다고 한다. 김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플렉스라고 하지 않나. 과시적 소비와 그걸 인증하는 이미지가 넘쳐난다. 동시에 팬데믹으로 죽음이 너무나 가까이 있다. 이 의미심장한 조합에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가 그려지던 시기가 내게 겹쳐 보였다.” 네덜란드 정물화에 있던 해골과 생선 대신, 작가는 무당벌레, 박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숙주로 알려진 천산갑의 꼬리를 넣었다. 사진작가인 그는 유화를 그린 네덜란드 화가와 달리, 카메라를 들었다. 플로리스트 지니엠에 요청해 그림 같은 실제 꽃병과 꽃을 준비했다. 꽃신으로 한국 작품의 정취를 더하고, 박쥐, 천산갑 등의 이미지를 콜라주 해 후반작업을 거쳐 작품을 완성했다. 100호 크기 에디션 중 1번 인쇄품이 지난해 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소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