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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약자의 편서 ‘인권 변호’ 헌신… 뜨거운 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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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헌 前 감사원장 발인 엄수

교수·학생·시민 등 300명 추모
“고귀한 삶 영원히 기억할 것”
광주 5·18 민주묘지서 영면
25일 전북 전주시 전북대학교 광장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한 한승헌 전 감사원장의 추모 노제가 진행되고 있다. 전주=김동욱 기자

“약자의 편에서, 공의와 사랑의 편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변론하며 올곧게 살아온 한국의 큰 어른을 잃은 슬픔이 너무도 크다.”

 

오랫동안 인권변호사로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다 88세를 일기로 타계한 한승헌 전 감사원장을 추모하는 행렬은 25일 오후 노제가 열린 그의 모교 전북대에서도 이어졌다. 고인의 운구가 안장되기 전 마지막으로 대학 본관 앞 광장에 도착하자 교수와 학생, 민주사회 인사, 시민 등 300여명은 헌화와 묵념으로 고인을 추모하며 배웅했다.

 

시민사회단체를 대표한 황민주씨는 추모사를 통해 “모든 국민이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며 그동안 보여준 고귀한 삶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다짐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 후배인 김승수 전주시장도 “가슴 뜨거운 인권변호사로서 누구도 가지 않은 길, 질 것이 뻔한 싸움에 먼저 뛰어들어 시대의 나침반이 되어 줬다”고 추도했다. 김용택 시인은 ‘당신이 주고 가신 시가 우리 역사의 답이 되었습니다”라는 추모시를 영정 앞에 올렸다. 왕기석 판소리 명창은 애통한 죽음을 노래한 ‘임방울 명창의 추억’을 추모곡으로 헌정했다. 좌우명 ‘자랑스럽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부끄럽게 살지는 말자’를 남긴 고인은 노제를 마치고 광주 5·18 민주묘지에서 영면했다.

 

전북 진안에서 태어난 고인은 인권변호사로서 평생을 헌신했다. 유신독재시절에는 양심수와 시국사범 변호에 앞장서며 인권 수호와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 특히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 사건(1967)과 민청학련 사건(1974), 인혁당 사건(〃),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1980) 등 현대사에 기록된 주요 시국사건을 앞장서 변론해 ‘시국사건 1호 변호사’로 꼽혔다.

 

고인은 두 차례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나, 인간에 대한 사랑이 넘쳤고 웃음의 여유를 잃지 않았다. 민주화 이후에는 법조계 원로로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전신인 ‘정의실현 법조인회’를 결성해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앞장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