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5월 미국은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을 규합하여 인도태평양 전략을 본격적으로 출범시킬 예정이다. 그 첫 행보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2∼13일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들을 초청해 미·아세안 대화관계 수립 45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정상회의를 개최한다. 이후 20∼24일 한국, 일본 순방을 거치면서 인도태평양 전략이 구체적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특별정상회의를 통해 미국과 아세안은 코로나19와 보건, 해양협력, 연계성, 경제성장, 인적교류 등 지난 10월 정상회담의 논의 내용을 발전시키는 한편, 미·아세안 관계를 아세안과 호주·중국 간 관계와 같이 최고 수준인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시키는 새로운 전기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금번 정상회의의 진짜 주인공은 인도태평양 전략, 그중에서도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가 될 공산이 크다. 지난 2월11일 바이든 행정부가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의 10대 실천계획 중 ‘강력하고 통합된 아세안’ 만들기와 ‘IPEF 주도’ 목표를 결합하여 아세안과 IPEF를 논의하는 것이 정상회의의 핵심 의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세안 미국 대표부도 이번 정상회의에서 ‘미국과 아세안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공동의 비전을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IPEF는 미국이 주도하여 중국을 견제하는 아시아 ‘경제안보 동맹’을 결성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누가 참가자 명단에 포함되고, 어떤 분야와 방식을 도입할지 미지수다. 5월 기준으로 미 행정부는 아세안 10개국 중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브루나이 7개국에 IPEF 참여를 요청했다. 분야는 당초 6개 모듈에서 공정하고 탄력적인 무역, 공급망 복원, 인프라 및 탈탄소화, 조세 및 반부패의 4대 축으로 압축될 전망이나, 이마저도 각 국가별로 참여 신청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우선 추진 분야로 거론되는 무역에는 디지털, 노동, 환경 의제가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10개국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분야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세안의 핵심 원칙인 ‘아세안 중심성’의 기본은 10개국 모두의 참여인데, IPEF가 이런 방식이라면 아세안 중심성은 지켜지기 어렵다.
게다가 신속협상권한(TPA)이 만료된 상황에서 의회 승인을 받지 못한다면 협정의 법적 구속력과 지속성 측면에서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시장 접근 없이는 참여국 확대가 어렵고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기도 어렵다는 국내외 산업계의 요구도 지속되고 있다. 이 같은 중요한 사안들은 향후 IPEF 참여국 간의 첫 번째 장관급 회담에서 다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당장 이번 미·아세안 정상회의에서부터 IPEF는 조금씩 조정을 해 나갈 것으로 관측된다. 만약 바이든 대통령이 아세안 국가들을 IPEF에 승선하도록 설득하지 못할 경우 IPEF 출범이 또다시 늦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4월 방미한 한·미 정책협의대표단을 만난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IPEF 추진을 위해 아세안과의 협력 등 한국의 역할을 기대한다”고 했다. IPEF에서 한국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 이전에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무엇인가? 아세안은 2019년 진통 끝에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AOIP)을 발표했다. 미국의 다양한 요구 앞에 아세안의 이익을 지키면서 협상을 할 수 있는 마지노선은 마련한 셈이다.
IPEF는 기존의 자유주의 시장경제 제도와 결이 전혀 다르다. 글로벌 통상질서의 대안이 될 수는 없지만 IPEF가 한국의 국익에 기여하도록 이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동안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협력을 논의했던 신남방정책을 활용하는 방법을 포함해 한국의 이익을 최대치로 높일 수 있는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한국의 IPEF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금번 미·아세안 특별정상회의는 우리에게 각별한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