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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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희창칼럼] 어설픈 ‘경찰 통제안’ 혼선 키울 뿐

행안부 내 경찰국 설치, 반발 커
경찰의 독립성·중립성 훼손 우려
여론조사, 반대가 찬성보다 많아
“경찰위원회 실질적 강화가 낫다”

일선 경찰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경찰 통제 방안으로 31년 전 사라진 경찰국을 부활시키는 수순을 밟고 있어서다. “경찰이 송어도 아니고 어찌 1980∼1990년대로 회귀하란 말인가” “경찰을 정권의 하수인으로 만드나” 등의 반발이 격해지고 있다. 전·현직 경찰단체들의 집단 성명이 쏟아지자 김창룡 경찰청장은 긴급 지휘부 회의를 열고 법적 대응까지 모색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지시로 구성된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이하 자문위)는 곧 경찰 통제 방안이 담긴 권고안을 낸다. 치안정책관실 신설, 행안부 장관의 경찰지휘규칙 제정, 경찰 고위직 후보 추천위원회 구성을 통한 장관 인사권 실질화 등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친(親)검찰 성향의 위원들이 자문위를 주도한다는 비판 속에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수렴했는지 의문이다.

채희창 수석논설위원

경찰은 지난해 1차 수사권 조정으로 1차 수사권과 수사 종결권을 확보했고, 오는 9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이 시행되면 공직자·선거·방산비리·대형참사 등 중대범죄 수사까지 넘겨받는다. 지금도 14만여명이 수사·정보·치안·교통 업무 등을 맡고 있는데, 수사권이 확대되고 2024년 국정원으로부터 대공수사권까지 넘겨받으면 그야말로 ‘공룡경찰’이 된다.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필요성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경찰국 설치에 대한 반대가 만만치 않다. 과거 내무부 치안국이나 치안본부가 경찰을 관리하면서 경찰의 정치 중립성이 크게 훼손된 전례가 있다. 특히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대표적 흑역사다. 이를 막기 위해 민주화 이후 1991년 경찰청을 외청으로 독립시켰다. 경찰국 부활이 시대에 역행하는 조치라는 지적은 피할 수 없다. 어제 한국사회연구소의 여론조사도 경찰국 설치 반대가 46.4%로 찬성(39.7%)보다 높았다. 대통령, 행안부 장관, 경찰청장의 수직적 지휘라인이 형성되면 경찰의 중립이 위협받지 않겠나.

정부조직법상 행안부 장관의 사무에 ‘치안’이 없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행안부가 직접 치안활동을 하려면 법률을 개정해야 하고, 치안활동을 하는 경찰을 통제·관리만 하려면 시행규칙을 개정해야 할 것이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이 어려운 만큼 이 장관이 시행규칙으로 추진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법치주의 위반 논란이 예고된 것이다.

이 장관은 윤 대통령의 고교 및 서울대 법대 직속 후배다. 그는 경찰국 부활이 경찰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질문에 “정치적 중립은 모든 공무원이 하는 건데 왜 경찰만 독립을 해야 하나”라고 답했다. 경찰이 수사기관이란 걸 간과하고 통제 대상으로만 보는 것 아닌가. 경찰청장이 바뀌지 않았는데 치안정감 6명을 먼저 교체한 것은 이례적이다. 치안정감 인사발령 전에 후보자 개별 면담을 해 ‘줄 세우기’ 구설에 올랐다.

대통령이 검찰총장 출신이라 경찰은 안 그래도 ‘불안한 눈빛’으로 주시하고 있다. 대선 공약이었던 경찰청장 장관급 격상이 인수위 발표 땐 슬그머니 빠져 불만이 크다. 경찰 내부 목소리를 개혁에 반영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위에서 힘으로 찍어 누르는 개혁은 성공하기 어렵다. 요즘 경찰은 옛날처럼 고분고분하지 않다. 경찰이 수긍할 만한 통제 시스템과 중립 보장 방안, 자치경찰 확대 등 제반 문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답을 내야 한다. 경찰 업무의 90%가 넘는 경비, 방범, 교통 등 민생업무는 장관이 통제할 수 있지만, 국가수사본부 등 수사경찰의 중립성을 흔들어선 안 된다.

경찰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공정·중립을 지켜야 한다. 이를 위해 경찰을 견제·감독하는 국가경찰위원회 제도가 오래전 도입됐다. 그간 경찰위원회가 유명무실했지만 제도는 운영하기 나름이다. 시민단체와 야권 등도 경찰위원회 권한을 실질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경찰위원을 중립적인 전문가로 구성하면 힘이 실릴 것이다. 경찰이 정권에 예속되는 걸 바라는 국민은 없다. 너무 서두르지 말라.


채희창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