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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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에서 삶을 건지다… 길에서 만난 폐지 수거 노인들 [밀착취재]

“이거 해서 동네 어려운 사람들한테 도움 주지. 면도기도 사주고 차비도 주고. 동네 행사 할 때 찬조금도 내지. 하루 1만원 정도 버는 것 같아. 어떨 땐 1만5000원도 벌고. 생활비는 따로 있어. 이걸로는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 도울 때 쓰는 거야. 젊은 사람들도 놀지 말고 일해야 돼. 노인병원 같은 데 가서 봉사활동도 좀 해보고 노인들 존중도 좀 해주고. 나는 이 일이 부끄럽지 않아. 좋은 일 하려고 하는 일이야.” 서울 동대문구의 한 고물상 앞에서 만난 김기립(80) 할아버지의 말이다.

여름밤 더위가 아직 가시지 않은 8월의 어느 하루. 서울의 한 고물상(재활용자원수집상) 앞에 리어카들이 세워져 있다. 뜨거운 한낮, 동네를 부지런히 돌아다녔을 손수레들이 아직 식지 않은 거리에서 다음 날을 기다리고 있다.
폐지를 가득 실은 리어카가 세워져 있다. 가로수를 칭칭 감은 나일론 끈이 어설픈 모습으로 리어카를 부여잡고 있다.

서울의 여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전국의 어느 지역보다 비가 많이 와 동네를 다니며 폐지를 수거하는 어르신들의 삶이 그 어느 때보다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비에 젖은 폐지를 수거하는 모습이 자꾸만 맘에 쓰였다. 조금이나마 그분들의 얘기를 듣고 싶었다.

“1㎏에 90원 줍니다. 책은 좀 더 비싸고요. 사람마다 다르지만 보통 1만원에서 3만원 정도 번다고 봐요. 우리는 추석 하루 쉬고 문을 열어요. 연휴 끝나면 폐지들이 많이 들어오긴 하지만 예전 같진 않아요.” 한 고물상 주인의 말이다.

 

거리에서 만난 김기립 할아버지. 폐지 팔아 번 돈으로 동네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고 한다. 하는 일이 부끄럽지 않고 좋다고 자랑스레 말한다. 폐지를 팔고 다시 길을 나선다.

고물상에서 폐지를 팔고 나온 할머니 한 분께 벌이는 괜찮은지 묻자 “얼마 전에 산 리어카를 잃어버렸어요. 21만원이나 주고 산 건데 누군가 훔쳐 갔어. 아니 쇠사슬로 묶고 자물쇠까지 채워놓았는데 그걸 끊고 훔쳐 갔어. 억장이 무너지지. 하루 1만원 정도 버는데…. 한 달 일해 겨우 장만했는데 도둑맞았어. 또 이걸(접이식 카트)로 일을 해야지”라며 한숨을 쉰다.

 

비가 많았던 여름이라 젖은 종이상자가 많다. 2㎏을 1㎏으로 쳐준다고 한다. 리어카에 쌓는 것도 요령이 있다고 한다.

종로구의 한 골목에서 만난 할머니는 “80을 훌쩍 넘겼지. 여긴 100㎏ 하면 7000원 정도 벌어. 1㎏에 70원이야. 젖은 종이박스가 섞여 있으면 2㎏을 1㎏으로 쳐. 이 동네에서 폐지 줍는 일 하는 이들 몇몇 있어. 다른 동네서 원정 오는 사람들도 있고. 나 쉬는 날엔 그 사람들이 와 싹 쓸어 가. 좋은 종이박스만 가져가고 안 좋은 건 막 흩트려 놓고. 나쁜 사람들이야. 싹수가 없어. 자식들은 이런 일 하지 말라고 해. 하지만 하다 보니…. 그냥 움직이다 보니 아픈 몸도 좀 괜찮아지는 것도 같고. 요즘은 폐지 가져가라고 연락이 와. 돈복은 없어도 일복은 있는 것 같아. 네 복이면 가져가고 내 복이면 받으면 돼. 이러다 힘이 없어지면 나도 없어지는 거지. 추석에는 일 안 해, 내가 사장인데”라고 얘기를 늘어놓다 고장 난 수도를 고치러 왔다는 전화를 받고 급히 집으로 뛰어간다.

 

길에서 만난 또 다른 70대 할머니는 “예전에는 보건소에서 일했어. 청소도 하고 거기서 나오는 폐지도 팔고 해서 애들 공부 다 시켰어. 이 일만 30년이야. 요즘은 하루 5000원 정도 벌어. 반찬값 정도. 어저께는 2200원 벌었어. 평생 일했기 때문에 하는 거야. 그냥 하는 거야”라고 말한다.

 

폐지를 가득 실은 리어카들이 쉴 새 없이 고물상으로 드나든다. “추석엔 일 안 해∼ 내가 사장인데….” 한데 추석 하루만 쉰다고 한다. 그냥 삶은 계속된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2017년 기준으로 폐지를 수집하는 어르신이 약 6만6000명으로 추정된다고 조사 자료를 발표했다. 또 자원재활용연대라는 단체는 2012년 기준으로 폐지수집 인구가 175만명이나 된다고 주장했다.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커다란 간극의 어디쯤 위치해 있지 않을까. 2021년 기준으로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857만여명이다. 물난리로 유난히 힘들었던 2022년 여름이 지나고 있다. 곧 추석이다. 여름휴가 때도 찾아뵀지만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문득 생각난다.


허정호 선임기자 h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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