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작은 광산 마을에서 열네 살 어린 광부 생활을 시작한 아이가 3년 만에 죽을 고비를 맞는다. 17세에 맞은 투병생활 중 화가 반 고흐 책을 읽고 병이 나으면 예술가로 살기로 결심한다. 미술교육 한번 받아본 적 없이 광산에서 컸지만, 그는 결국 일평생을 프랑스와 미국 등을 오가며 현대미술가로 활동하게 된다. 이 영화 같은 이야기 주인공은 프랑스 출신 재미화가 장 마리 해슬리(83)다.
전북 완주군에 위치한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장 마리 해슬리-소호 너머 소호’ 전시(사진)가 열리고 있다. 아픔을 예술로 이겨낸 화가 그림을 안아주듯 모악산 아래 미술관에 작가의 평생 화업이 펼쳐졌다. 장 마리 해슬리가 어린 시절을 보낸 광산촌 마을은 독일과 접경지역에 있는 알자스다.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으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열네 살 나이에 사회 첫발을 내딛으며 향해야 했던 곳은 갱도였고, 그런 삶에 예술이 들어설 틈은 없었다. 원인 모를 병으로 사선에서 싸울 때 형이 책 ‘반 고흐의 생애’를 사주었고 수록된 그림들에서 구원의 빛을 느껴 드로잉을 시작했다고 한다.
전시는 다섯 섹션으로 나눠 작가의 전 생애를 따라간다. ‘별의 순간들’에서는 광부에서 화가로 전환하는 시기에 작가가 느꼈던 구원의 빛이 담긴 드로잉과 습작 등을 선보인다. ‘뉴욕 미술 현장 속으로’에서는 1972년 뉴욕 소호로 파고들어 활동하기 시작한 뉴욕 이주 초기 드로잉과 회화 조각작품을 선보인다. 당대 옵아트와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등 현대미술 트렌드가 일어나는 한복판에서 남겼던 작품들로 기하학적 연작들이 눈길을 잡는다. ‘출발점으로의 귀환’에서는 1980년대 작가를 대표하는 표현주의 양식 작업을 모았다. 그는 “자유로움과 우아함을 동시에 지닌 작가”(미국 뉴욕 비평가 조너선 굿먼)로 평가받곤 했다. 이번 전시는 그 과정이 반 고흐에서 시작된 영감, 그에 이어진 치열한 실험과 이를 위한 이주, 내적 격동을 통해 완성된 삶 자체의 결과임을 보여준다. 10월30일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