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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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기사 ‘콜 취소’에 음식 버리기 다반사… 플랫폼은 ‘뒷짐’만

거리두기 사라진 후 배달 이용자 줄어 경쟁 치열
‘조리대기’ 시 콜 취소, 업주·기사 간 대표적 갈등
“조리 시간 전에 도착한 기사가 다른 콜 잡고 가버려”
“시간이 돈… 대기요금 산정 요구해도 플랫폼 무반응”

서울 관악구에서 중화음식점을 운영하는 정모(51)씨는 최근 배달기사들의 잇따른 ‘콜(주문) 취소’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불기 쉬운 면 요리 특성상 배달기사가 도착할 시간을 예상해 조리완료 버튼을 누르는데, 기사가 콜을 받고 식당에 왔을 때 음식이 나와있지 않으면 콜을 취소하고 떠나버려서다. 정씨는 “다른 배달기사가 오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탓에 정성들여 만든 음식을 버리는 일이 다반사”라며 “콜 취소로 인한 피해가 크지만 배달 매출이 전체의 20%를 차지해 기사나 플랫폼에 항의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배달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음식점 업주와 배달기사, 애플리케이션(앱) 이용자 간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배달 플랫폼 업계는 ‘단순 중개만 한다’는 이유로 몇 년째 갈등 중재에 소극적으로 나선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각 배달 플랫폼은 배달 관련 분쟁에 대해 당사자 간 문제로 규정하거나 이해관계자가 악용할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구체적인 규정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사진=뉴시스

9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라지고 배달 이용자들이 줄어들면서 배달경쟁이 치열해졌고, 업주와 배달기사 간 분쟁도 늘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온라인쇼핑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음식서비스 거래액은 2조23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3% 감소했다. 음식서비스 거래액은 지난해 7월부터 5개월 연속 하락세다.

 

업주와 배달기사 간 발생하는 대표적인 갈등이 ‘조리대기’ 시 콜 취소 문제다. 조리대기는 배달기사가 콜을 받고 식당에 도착해 음식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을 뜻한다. 자영업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조리 예상시간보다 앞서 도착한 기사가 음식이 나와있지 않으니까 다른 콜을 잡고 바로 나가버렸다. 우리 콜은 취소하지도 않아 고객센터를 통해 해결하느라 한참 늦게 음식을 보냈다” 등 콜 취소로 인한 고충을 토로하는 글이 꾸준히 올라온다.

 

배달기사들은 시간이 ‘돈’인 배달노동 특성상 조리대기 때 마냥 기다릴 수 없는 데다 관련 보상도 없다고 항변한다. 배달기사가 하루에 잡는 콜의 수도 한정돼 있어 조리대기 시간이 늘어나면 그만큼 수입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양용민 이동노동자북창쉼터 선임간사는 “조리대기 시간이 10분 이상 늘어나면 ‘대기요금’을 산정해달라고 대부분의 퀵·배달 노동조합이 요구하지만 플랫폼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우람 라이더유니온 정책국장도 “어느 회사에서도 조리대기 문제에 대해 가이드를 주지 않고 노조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통제하지 않는다”며 “이를 일탈로 규정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배달 플랫폼 업체 관계자는 “배달원에게 특정 업무 지시를 하거나 갈등 상황에 직접적인 개입을 시도하면 불법파견 문제가 된다”며 “고객센터 등을 통해 갈등을 우회적으로 해결한다”고 언급했다. 플랫폼 업체는 업주와 기사, 애플리케이션 이용자 등을 관리하는 고객센터를 각각 운영해 분쟁 해결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분쟁이 몰리는 식사 시간대에 고객센터와의 연결이 원활하지 않고 문제 해결 방식도 허술하다는 불만이 많다. 최근 배달 앱을 이용한 최모(33)씨는 “도착 예정시간이 한참이 지나도 배달이 안 와서 가게에 전화하니까 ‘기사가 안 온다’고 했다”며 “플랫폼 고객센터에 문의했는데 거기서도 제대로 대처해 주지 않아 예정 시간보다 한시간을 넘겨서 겨우 받았다”고 푸념했다.

 

전문가들은 배달 시장에서 지배적 지위를 가진 플랫폼 업체가 분쟁 해결에 대한 대책을 세부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남성욱 변호사(법무법인 진성)는 “플랫폼을 쓰지 않으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점을 고려하면 주도권을 쥔 플랫폼이 고객과 업주 등에 대한 컴플레인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며 “단순 프리랜서와 다르게 플랫폼 배달기사들의 ‘근로자성’이 있기 때문에 플랫폼은 사용자로서 책임도 있다”고 단언했다. 이은희 인하대 교수(소비자학과)는 “가게 주인과 소비자, 배달기사 누구든 문제를 일으킬 수 있고 관련해 제재가 필요한 부분도 있다”며 “문제 주체에 대한 정보 관리 책임은 플랫폼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이정한·이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