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이번주 중 국회로 넘어오는 이 대표 체포동의요구서는 24일 본회의 보고 절차를 거쳐 27일 표결에 부쳐질 예정이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에 기대어 부결시키면 개인 비리를 감싼 ‘방탄 정당’ 오명을 피할 수 없다. 일부 이탈표로 가결되면 ‘이재명의 민주당’은 대혼돈에 휩싸일 것이다. 수사가 마무리되지 못한 백현동·정자동 개발사업 비리, 쌍방울그룹의 변호사비 대납 및 대북송금 의혹 사건도 여전히 뇌관으로 남아 있다.
현재로서는 부결 가능성이 꽤 높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못마땅해하는 의원들도 검찰이 제1야당 대표에 구속영장을 청구한 건 민주당을 압박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대표 측도 검찰이 판을 깔아놓은 여론 재판에 밀려선 안 된다는 취지로 내부를 설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 이 대표 친전을 믿는 쪽보다 내년 총선 공천이 걱정되는 이들이 많겠지만 당내에서 방탄을 포기하자는 목소리는 많지 않다.
173쪽에 달하는 구속영장 청구서에도 이 대표가 “죄가 없다”고 강변하는 데는 나름 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그가 검찰에 제출한 33쪽 진술서나 검찰 영장 청구에 반박한 20쪽 설명자료 요점은 자신과 대장동 일당, 측근인 정진상·김용을 잇는 물증이 없다는 주장이다. “공모를 입증할 증거는 한두 명의 진술뿐인데 그마저 번복되는 등 신빙성이 없다”, “실행 과정에 (내가) 구체적으로 한 행위가 없다”, “개인적으로 부정한 돈을 취한 바 없다.” 이 대표 ‘천화동인 1호’ 지분 의혹의 키를 쥔 김만배와 측근 정진상·김용이 입을 다무는 한 판도라 상자는 열리지 않으리라 과신하는 눈치다.
최근 곽상도 전 의원, 윤미향 의원 재판 결과도 이 대표식 ‘정신 승리’를 부추길 법하다. 김만배 밑에서 6년간 일한 곽 전 의원 아들이 퇴직금 50억원을 받았는데 아버지와 무관하다는 판결은 상식적이지 않다. 윤 의원이 정의기억연대 후원금을 개인 계좌에 넣고 임의로 썼는데도 8개 혐의 가운데 7개를 무죄로 본 판결도 깃털처럼 가볍다. 이 대표는 대뜸 ‘윤미향 의원을 악마로 만든 검찰’이라는 글을 올려 자신과 동일시했다. 의심과 입증은 별개라는 게 1심 재판부 판단이다.
하지만 4895억원이라는 천문학적 액수의 배임 혐의를 받는 이 대표 사건은 질적으로 다르다. ‘시정농단’이란 검찰 표현은 차치하더라도 7800억원대 민간업자들의 수익과 분탕질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당시 시장인 이 대표 책임을 무겁게 따져야 한다. 스스로 ‘단군 이래 최대 공익 환수 치적 사업’이라고 내세웠다.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도 단체장 업적을 위해 지자체 인허가권을 사유화했느냐가 핵심이다. 133억원이 ‘제3자 뇌물’인지는 재판부가 판단할 문제지만 기업별 민원 처리, 후원금 수수 과정이 상세하게 적시돼 있다.
진술서에서 주장한 대로 아무런 불법행위가 없었다면 이 대표는 법원에 나가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면 될 일이다. ‘촛불’을 상기시키며 “그깟 5년 정권이 뭐 그리 대수라고 이렇게 겁이 없느냐”고 윽박지르는 건 국회 다수당 대표답지 못하다. 더 놀라운 건 문재인정부에서 시작된 검찰 수사를 ‘이승만 정권의 조봉암 사법살인, 박정희 정권의 김영삼 의원 제명, 전두환 정권의 김대중 내란음모조작 사건’에 빗댄 발상이다.
친명(친이재명)계 좌장으로 불리는 정성호 의원은 정진상·김용 특별접견에서 “이대로 가면 이재명 대통령이 되는 것”이라고 말해 회유 논란을 불렀다. 그러자 정진상은 변호인을 통해 “(정 의원이) ‘이재명이 이 역경을 이겨내면 김대중 대통령처럼 위대한 정치인이 될 수 있다’고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단체장 시절 비리 수사가 민주화운동으로 구속되고 사형선고를 받은 희생적 내러티브로 치환될 수 있다니. 문제는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의원들이 민주당 다수라는 데 있다. “민주당은 집단적 망상에 빠져 있는 것 같다”는 김해영 전 의원 말이 과장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