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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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의식해 배우로서 한계 두지 않아… ‘로코’가 청년만의 문화라는 틀 깼죠”

‘일타 스캔들’ 열연한 전도연

“오랜만의 밝은 작품 제의 좋았지만
배역에 이입 안 돼 처음엔 출연 거절
‘맞는 옷 입으라’ 작가 응원에 힘 얻어

새 작품 할 때마다 불안정함 느껴
현장 모두의 만족 위해 철저히 준비

많은 사람들 있는 곳서 처음 키스신
민망하고 창피… 연기 아닌 찐 반응”
(전도연이라는 배우로서) 경계는 제가 만든 게 아닙니다. 주변 사람들이 만들었어요. 저는 누누이 ‘할 수 있다’고, ‘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저는 제 말대로 ‘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에 (tvN ‘일타 스캔들’을 통해) 해낸 거고, 사람들이 ‘아, 그랬구나. 전도연 배우가 이랬었지’라고 상기할 수 있도록 한 것 같습니다.

 

지난 6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전도연은 최근 미국 잡지 버라이어티와 인터뷰에서 “영화 ‘밀양’ 이후 오히려 경계 안에 갇혀 있었다. 더 어둡고, 더 깊고, 진지한 작품에 대한 제안이 들어왔다”고 한 부분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전도연은 스스로 “한계를 두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 5일 종영한 ‘일타 스캔들’도 그 일환이었다. 드라마 초기 50세의 전도연이 로맨틱 코미디를 한다는 데 우려가 컸다.

배우 전도연은 “드라마를 통해 사람들이 ‘아, 그랬구나. 전도연 배우가 이랬었지’라고 상기할 수 있도록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매니지먼트 숲 제공

“한 번도 제가 로맨틱 코미디를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촬영하면서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알게 된 거 같아요. 나이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우리는 나이에 맞는 삶을 살고 있나요? 인생을 살아가는 데 나이를 의식하면서 살 필요가 없어요. 저도 더 이상 (로맨틱 코미디를) 못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안 했죠.”

전도연은 로맨틱 코미디가 젊은 사람들만 향유하는 문화가 아니라고도 했다. 그는 “로맨틱 코미디에는 많은 모습과 이야기가 있다”며 “젊은 사람들이 ‘꽁냥’ 하는 것으로 나는 의식하지도 않았고 그런 틀이 있는지도 모르지만, (‘일타 스캔들’로) 그 틀을 깬 것 같다”고 설명했다.

 

드라마는 사교육 전쟁터에서 펼쳐지는 반찬가게 열혈 사장 남행선(전도연)과 수학 강사 최치열(정경호)의 로맨스를 다룬다. 영화 ‘비상선언’,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비롯해 드라마 ‘인간실격’ 등 무게감이 있는 장르물에만 출연했던 전도연으로서는 오랜만의 밝은 드라마였다. 하지만 정작 전도연은 “제의는 좋았지만, 출연을 거절했었다”고 말했다. “밝은 작품이 오랜만에 들어왔고 그런 제의가 고마웠지만, 대본을 읽고는 남행선의 텐션(긴장상태·분위기)을 충분히 연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출연을 거절했어요. 어떻게 (연기로) 구현할 수 있지? 처음으로 제가 (배역에) 대입되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은 대본이었죠.”

하지만 전도연은 “남행선은 대본으로만 텐션이 높고 드라마도 판타지(환상) 같은데, 전도연이 연기하면서 현실적인 인물이 되기를 바랐다”는 양희승 작가의 설득에 결국 출연을 결심했다.

“사실은 너무너무 하고 싶었던 장르였고, 나한테 아직 발견하지 못한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언급한 전도연은 ‘나한테 맞는 옷을 꺼내 입으라’는 양 작가의 응원에도 힘을 얻었다고 했다. “(연기를) 해냈다기보다는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촬영 당시를 회상한 전도연은 “작품을 할 때 그런 생각을 갖기가 쉽지 않은데, 이번에는 하는 내내 너무 즐거웠다”고 설명했다. “남행선에 맞춰져 있다 보니 (‘일타 스캔들’에서의) 가족들과 헤어지기 싫었다”고도 말했다.

 

다만 촬영하는 동안 불안하고, 긴장했다고 전도연은 귀띔했다. 데뷔 30년이 넘고 지상파 연기대상, 청룡과 대종상 여우주연상,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상 등 화려한 국내 수상 커리어뿐만 아니라 2007년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대배우로서 의외였다.

“일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제가 일을 대하는 태도는 훨씬 더 조심스럽고 뭔가 어려워지고 그런 것 같아요. 사람들은 경력으로만 보면 ‘편해질 법하지 않느냐’고 하는데, 이건 경력과 다릅니다. 매번 새로운 작품을 하고 새로운 배역을 연기합니다. 새로움에 노출되는데 어떻게 익숙해질 수 있을까요. 제가 느끼는 것에 집중하고 솔직해지자고 생각하는 순간부터는 계속 불안정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더욱이 전도연은 “촬영한다는 것은 공동 작업으로, 나만 신경 쓰면 되는 일이 아니다”라며 “그래서 현장에 가기 전에 철저하게 준비해 모두가 만족을 느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런 면에서 상대 배우인 정경호에 대해선 “자상하고 상냥하고 어느 순간 의지가 되는 배우”라며 “파트너로서 신뢰와 믿음이 들었다”고 칭찬했다. 조카 남해이의 노윤서와 동생 남재우의 오의식, 친구 김영주의 이봉련에 대해선 “진짜 가족처럼 사랑스럽고 힐링이 됐다”고 설명했다.

함께한 배우들과 너무 좋은 추억을 만들고 즐겁게 촬영했다는 전도연은 특히 많은 사람 사이에서 남행선과 최치열이 키스하는 마지막 장면에 대해선 “진짜 반응”이라고 밝혔다.

“사방이 열린 공간에서,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 키스하는 것은 처음 해봤어요. 거기서 보인 반응은 진짜 반응이었어요. 민망하고 창피하기도 하고…. (드라마 마지막이 되니) 제가 무엇을 해도 남행선처럼 보이니까, 그런 것들(창피해하는 모습)이 밝고 즐거워 보여서 좋아 보였던 것 같습니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